[이젠 8강] ‘골 넣는 수비수’ 동점골 이정수… 머리 안 닿자 발로∼
입력 2010-06-23 18:30
‘골 넣는 수비수’ 이정수(30·가시마)의 주가가 치솟고 있다. 그리스전 선제골에 이어 23일 나이지리아전에서도 경기 흐름을 바꾸는 동점골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나이지리아전에서 터뜨린 골은 그의 집념과 집중력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이정수는 기성용의 프리킥 크로스를 헤딩슛으로 연결하려고 했지만 머리가 닿지 않았다. 찰나의 순간, 자칫 팔이나 다른 신체부위에 튕겨 찬스가 무산될 위기였다.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오른발을 뻗었고 결국 골로 연결됐다. 공격수 출신 수비수의 진가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축구팬들은 헤딩과 발을 함께 사용했다는 의미로 ‘헤발 슛’, 골을 넣기 전 고개 숙여 인사했다는 의미에서 ‘동방예의지국 슛’이라는 애칭을 붙이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정수는 조용형(제주)과 함께 수비라인 중앙을 책임지지만 세트피스 때는 1m85의 당당한 체구와 공격수 출신이라는 장점을 살려 골을 노린다. 그리스전에서도 기성용의 프리킥을 깨끗하게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해 선제골을 터뜨렸다. 이 골로 상큼한 출발을 할 수 있었던 대표팀은 최종전에서도 그의 동점골에 힘입어 경기흐름을 가져오고 원정 월드컵 첫 16강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 같은 활약은 마치 ‘캡틴’ 박지성과 한솥밥을 먹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수비수 네마냐 비디치(세르비아)를 연상케 한다. 비디치는 세트피스 상황에서 영양가 만점의 골로 소속팀 맨유를 위기에서 여러 차례 건져낸 바 있다.
2002년 FC서울의 전신 안양 LG에서 공격수로 데뷔한 이정수는 2003년 당시 조광래 감독의 권유로 수비수로 변신했다. 그의 골 감각은 수비수로 변신 후에도 무뎌지지 않았다. 이정수는 지난해 일본 J리그로 이적한 뒤 7골을 터뜨리는 활약을 펼쳤다.
이정수는 홍명보에 이어 ‘골 넣는 수비수’ 계보도 잇는다. 그동안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두 골을 넣은 수비수는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두 골을 터뜨린 홍명보가 유일했다.
하지만 이정수의 수비력에는 의문부호가 찍혀 있다. 아직 ‘제2의 홍명보’로 불리기 이른 이유다. 나이지리아전에서 허정무호의 수비라인은 여러 차례 잔 실수와 호흡이 맞지 않는 모습으로 가슴 졸이게 했다. 이정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유럽 선수에 뒤지지 않는 체격조건과 투지 넘치는 몸싸움으로 그리스전에서 상대 예봉을 꺾었지만, 아르헨티나전과 나이지리아전에서 조직적으로 달려드는 상대 공격수를 놓치는 모습을 몇 차례 노출했다. 이정수가 이런 단점을 보완해 우루과이전에서는 또 어떤 활약을 보일지 주목된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