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상온]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입력 2010-06-23 19:00


“중·러의 北 감싸기로 더 멀어지는 한반도 안정과 평화, 누가 책임지나”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딱 그 짝이다. 천안함 피격침몰사건을 놓고 보여주는 중국과 러시아의 행태. 말로는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내세우며 실제로는 북한 역성을 드는 모습이 때리는 시어미를 말리는 척하면서 실은 부추기는 시누이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두 나라의 비호에 자신감을 얻은 북한이 앞으로도 마음 놓고 도발을 자행한다면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는 오히려 더 멀어질 게 뻔하다. 이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무디게 만든 양국의 북한 감싸기가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불량행동’으로 이어졌음이 이를 입증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그것을 바라는가.



양국은 중립국 스웨덴까지 포함된 다국적 조사단의 조사결과에는 눈을 감은 채 북한을 규탄하는 세계의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 완강하게 북한 소행임을 인정하지 않는 두 나라로 인해 우선 유엔 안보리의 대북 추가 제재 결의안 채택은 그 가능성이 극히 희박해졌다. 나아가 러시아는 이번 주말 캐나다에서 선진 20개국(G20) 정상회의와 함께 열리는 선진 8개국(G8) 정상회의 안보분야 공동성명 초안에 들어간 천안함 침몰 관련 북한 비난 문구를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교도통신).

조사단에 따르면 북한의 암습으로 46명의 생때같은 젊은이들을 졸지에 잃은 우리 국민들로서는 얄밉다 못해 복장이 터질 노릇이다. 가령 체첸 게릴라들에 의해 러시아 젊은이들이, 티베트 독립운동가들에 의해 중국 젊은이들이 그렇게 스러졌다고 가정하자. 조사 결과와 관계없이 다른 나라들이 확실한 증거가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는 체첸 게릴라와 티베트 독립운동가들 편을 든다면 러시아와 중국 국민의 심정은 어떨까.

이 같은 중국과 러시아의 북한 싸고돌기, 또는 어깃장(한국 입장에서 볼 때)은 물론 자국의 국익을 염두에 둔 냉철한 계산을 깔고 있음에 틀림없다. 적어도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나 그에 바탕을 둔 이른바 북방 3각 동맹, 혹은 전통적 ‘의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성적으로는 어느 나라든 국익을 추구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겠으되 북한 감싸기와 함께 한반도에 적극 개입하려는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은, 감정만으로 말하자면 불쾌하기 이를 데 없다. 특히 다소 과장해 북한은 물론 남한에까지 식민 종주국 행세를 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주는 중국의 경우.

중국은 지난 5월 김정일 방중 때 5개항에 합의하면서 ‘내정과 외교에서 중요 공통 관심사에 대해 심도 있게 소통해나간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도대체 남의 나라 내정과 관련해 소통을 강화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 내정도 자신들과 협의하란 말인데 북한을 식민지나 보호국으로 보지 않으면 이런 발상이 나올 수 없다.

중국은 또 그에 앞서 2008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의 방중 당시 “한·미 군사동맹은 지나간 역사의 유물”이라고 폄훼했다. 외교부 대변인의 이 발언을 놓고 논란이 일자 중국은 더욱 당당하게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다. 한국 외교·안보의 중심축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한·미동맹에 공공연히 시비를 걸고 나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베이징대에서 초빙교수로 활동한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중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통이라는 왕지스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장이 이렇게 말했다고 전했다.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포함해 동북아 안보문제를 한국보다는 중국과 먼저 논의하게 돼있다. 이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마치 한국의 (안보)외교권이 중국에 있다는 소리로 들린다. 그 옛날 청나라가 조선의 외교권을 쥐고 있었던 것처럼.

러시아는 어떤가. 공산주의 포기 이후 북한과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했다가 이를 회복하기 위해 열심히 중국의 뒤를 좇고 있는 모양새다. 남북한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북한의 체제 보장을 통해 정치·경제적 이익을 실현하려는 의도가 눈에 보인다.

어차피 각자의 국익 추구를 최우선시하는 냉엄한 국제관계에서 감정적으로만 대처할 수는 없겠지만 남북관계에서 ‘말리는 시누이’가 누구였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김상온 카피리더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