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달라진 한국축구 16강뿐이랴
입력 2010-06-23 17:57
태극전사들이 부활했다. 아르헨티나 전에서의 죽도 밥도 아닌 플레이 대신 그리스 전 때의 빠르고 생동감 넘치는 축구를 되찾았다. 나이지리아 전의 결과는 2대 2 무승부였지만 승리 이상으로 감동과 기쁨을 주었다. 이로써 대한민국 축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창조에 이어 원정 16강 진출의 꿈을 이뤘다.
대한민국 축구가 새롭게 태어난 날이었다. 나이지리아에 선제골을 내주고도 태극전사들은 단일한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이정수는 그리스 전 때와 똑같이 문전에서 프리킥을 받아 동점골을 만들었다. 공이 머리에 못 미치자 재빨리 발을 뻗어 골문으로 밀어 넣은 본능적 플레이다. 후반전에는 박주영의 프리킥이 수비벽 틈을 뚫고 골문 구석으로 휘어 들어갔다. 아름다운 골이다.
태극전사들은 실점을 해도 위축되지 않고 자기의 축구를 했다. 아르헨 전의 어이없는 대패를 극복했다. 실수를 해도 감싸고 서로를 격려했다. 불굴의 정신력을 발휘하면서도 경기를 즐길 줄 알았다. 유럽 등에서 경험을 쌓은 해외파가 대표팀에 전염시킨 새로운 문화다. 트위터 세대가 주력인 태극전사들은 명령과 지시보다 선수끼리의 소통으로 전체의 흐름을 만들어 가는 선진 자율 축구의 정착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국민들이 아르헨 전 패배를 비난하기보다 “괜찮다”고 위로하며 새벽잠을 반납한 채 “대∼한민국”을 외친 것도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조별 리그 세 경기 결과는 대한민국 대표팀이 본선에 어떻게 임해야 할지를 일러준다. 졸전 끝에 무너진 아르헨 전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허정무 감독은 우승 후보 아르헨을 상대로 수비에 치중하는 작전을 세웠다가 제대로 공격도 못해보고 패했다. 잘못된 선수 기용은 결정적 패인이 됐다. 16강전 상대 우루과이는 공격력과 수비력을 모두 갖춘 데다 강팀들을 물리쳐 기세가 올라 있다. 기발한 작전을 세우려 할 게 아니라 편견 없이 컨디션 좋은 선수들을 기용해 그리스 나이지리아 전처럼 스피드와 조직력으로 경기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 대한민국 축구가 26일 우루과이 벽을 넘어 8강에 들기를 기원한다. 2002년의 4강 신화 재현도 꿈꿔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