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8강] “토종 축구 매운맛 보여주마”

입력 2010-06-23 17:52


허정무(55) 감독이 일을 냈다. 한국의 남아공월드컵 최종 성적이 어디까지 갈지 아직 모르지만 허 감독은 한국 축구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달성했다.

그동안 외국인 지도자들에 밀려 저평가됐던 내국인 출신 지도자가 이룬 성과여서 더 빛이 난다. 지금까지 한국인 지도자가 이끌고 나간 원정 월드컵에서 조별리그를 통과해 16강에 오른 사람은 허 감독이 처음이다.

하지만 허 감독은 덤덤했다. 16강 진출에 만족하기보다는 8강 진출이라는 더 큰 환희를 준비하는 듯했다.

허 감독은 23일(한국시간) 16강 진출 확정 뒤 남아공 더반 스타디움에서 가진 공식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저는 크게 한 일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수 그리고 코칭스태프에게 공을 돌렸다. 허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 월드컵 무대에서 제 기량을 보여줬고, 주눅 들지 않았다. 코칭스태프들도 잘해줬다”고 말했다.

허 감독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석으로 내려와 한국 취재진과 일일이 악수했다. 남아공에 와서 지금까지 없었던 모습이었다. 자신의 축구 인생을 모두 걸고 남아공에 들어온 허 감독은 ‘드디어 해냈구나’하는 흥분됨을 가급적 겉으로 표시하지 않으려 했다.

한국-나이지리아전을 더반 스타디움에서 지켜본 김정남 1986년 멕시코월드컵 대표팀 감독은 “외국인이 아닌 국내 감독이, 그것도 원정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른 것은 한국 축구의 경사”라며 “한국인 감독들의 능력이 새롭게 조명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1955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난 허 감독은 영등포공고와 연세대를 졸업했다. 허 감독은 영등포공고 시절 축구를 잘해 고등학교를 5년 동안 다녔다고 사석에서 말한 적이 있다. 이 때문에 허 감독에 대한 일부 인물정보는 허 감독을 1953년생으로 적어놨으나 대한축구협회는 허 감독을 1955년생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허 감독은 한국 축구 지도자 최고 영예인 월드컵 대표팀 감독 꿈을 위해 달려온 입지전적 인물이다. 1990 이탈리아월드컵에 대표팀 트레이너로 참가한 허 감독은 1994 미국월드컵 때는 대표팀 코치로 선수들과 함께했다.

허 감독은 남아공월드컵 감독이 될 때까지 대표팀에서만 선수-트레이너-코치-감독으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왔다. 허 감독처럼 다양한 대표팀 경력을 가진 국내 지도자는 거의 없다. 허 감독은 우루과이전에서도 승리할 경우 사상 첫 원정 월드컵 8강이라는 금자탑을 쌓는다.

더반=이용훈 기자 co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