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따라 걷는 ‘김포1길’… 한 걸음에 긴장감 두 걸음엔 아! 평화가 고맙다
입력 2010-06-23 17:33
경기도 김포에서 연천까지 서부전선 DMZ를 따라 조성된 12개 코스 182.3㎞ 길이의 ‘경기도 DMZ 평화누리길’. 이 가운데 첫 번째 구간인 김포1길(대명항∼문수산성) 15.4㎞가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걷기여행 상품으로 개발된다. 한국방문의해위원회 노영우 본부장은 “DMZ는 한국의 대표적 관광자원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상품화가 충분한 매력을 갖고 있다”며 “안전성이 보장되는 김포1길에 우선적으로 김포시와 함께 안내판 등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김포1길은 김포시 대곶면의 대명항에서 시작된다. 대명항은 염하수로를 사이에 두고 강화도를 마주보는 항구. 김포와 강화도를 연결하는 초지대교가 2002년 완공되고, 2008년에 공유수면 매립 공사가 완공되면서 포구의 정취는 사라졌다. 40여 업체가 입주한 수산물직판장엔 서해에서 갓 잡은 밴댕이 병어 황석어 꽃게 등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을 뿐 비릿한 내음의 항구는 의외로 조용하다.
대명항 북단에서는 오는 9월 완공을 목표로 김포함상공원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이곳에 전시된 함정은 1944년 미국에서 건조된 후 제2차 세계대전과 월남전에 참전하고 2006년 퇴역한 운봉함. 해병대 상륙함정인 운봉함은 천안함보다 길이 11.6m, 폭 5.3m가 더 큰 함정으로 안보교육 공간으로 활용된다.
김포함상공원 뒤편의 철문을 들어서자 해안철책 안쪽의 군 순찰로가 짙은 녹음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철조망 사이로 보이는 수로는 이름조차 생소한 염하(鹽河). 강처럼 생긴 염하는 김포와 강화 사이에 위치한 남북 방향의 좁은 해협으로 폭 200∼1000m, 길이 약 20㎞. 북한 신의주까지 오가던 뱃길이었지만 한국전쟁 후 봉쇄되었다가 2007년부터 어선의 통행이 허락되었다.
염하수로는 썰물 때 갯벌이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수심이 낮지만 밀물 때는 물살이 거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 한강, 임진강, 예성강의 물이 만나는 염하 북쪽의 월곶과 남쪽 황산도의 해수면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철책은 간첩의 침투를 막기 위해 한국전쟁 후 설치한 것.
김포1길 해안철책은 민통선이나 남방한계선 철책과 달리 북한 땅과 맞닿아 있지 않아 지뢰 등 위험물이 없다. 철책 안쪽으로 난 논밭길과 오솔길이 대부분 평탄한 흙길이라 걷기에도 좋다. 이따금 강화도에서 포성이 울려 어느 정도 긴장감도 느낄 수 있다. 한국방문의해위원회가 김포1길을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걷기여행 상품으로 개발하려는 이유다.
토끼풀, 개망초, 애기똥풀, 인동초 등이 만발한 철책길을 1.5㎞쯤 걸으면 덕포진이 나온다. 덕포진은 염하수로 건너 강화도의 덕진진과 함께 해협을 통해 한양으로 진입하려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한 조선시대의 군영. 병인양요(1866년) 때는 프랑스 함대, 신미양요(1871년) 때는 미국 함대와 치열한 포격전을 벌였던 곳으로 대포 6문과 조선시대 화폐인 상평통보, 포좌 19개가 발굴돼 국가지정 사적으로 보호되고 있다.
덕포진에는 사공 손돌의 무덤이 전해온다. 1232년 몽골의 침략을 피해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하던 고종은 사공 손돌이 뱃길이 없는 듯한 곳으로 노를 젓자 사공을 의심해 죽이라고 한다. 죽음을 눈앞에 둔 손돌은 바가지를 물에 띄우고 이를 따라가면 뱃길이 나올 것이라고 말한 뒤 참수된다. 바가지를 따라 해협을 무사히 빠져나온 고종은 뒤늦게 후회하고 손돌의 장사를 후하게 치러줬다고 한다.
김포1길은 손돌의 목을 벤 손돌목에서 가파른 언덕을 오르내린다. 하지만 이내 평탄한 길로 변한 김포1길은 잠시 철책과 헤어져 담장을 수놓은 장미꽃이 멋스러운 신안마을을 통과한다. 이어 옥수수와 벼가 자라는 들길, 아늑한 숲길을 걸어 다시 철책을 만난다. 신안마을과 염하수로 건너편의 강화도 광성보를 뱃길로 이어주던 덕포나루는 지금은 흔적만 희미하다.
폐타이어로 조성한 험로를 두세 번 더 오르내린 김포1길은 철책을 사이에 두고 한강에서 떠내려 왔다는 부래도를 스쳐 지난다. 해안이 잘 부스러지는 돌로 이뤄져 쇄암리로 명명된 마을의 들판 북단은 고양2리. 강화도 화도를 오가던 나루터인 원머루나루가 있던 곳이다. 김포1길은 이곳에서 김포CC를 지나 강화대교가 위치한 문수산성 입구에서 막을 내린다.
김포1길은 아직 이정표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길바닥의 푸른색 화살표와 주황색, 초록색 리본이 길을 안내하지만 헷갈리기 일쑤다. 중간에 쉴 곳도 없으므로 물이나 간식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대명항에 승용차를 두고 왔다면 문수산성에서 성동검문소로 나와 강화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탄다. 5분 소요. 강화터미널에서 700번 버스(40분 간격)를 타고 초지대교를 건너자마자 약암관광호텔 앞에서 하차하면 대명항이 보인다. 약 30분 소요(경기도 걷는길 http://cafe.daum.net/ggtrail).
김포=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