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용훈] 환경친화형 통행요금제 시급하다

입력 2010-06-22 17:56


갈 길 급한 운전자들이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한 마디씩 내뱉는다. “세금 거둬서 다 뭐한 거야. 시원하게 넓혀 놓지.” “막히는데 다들 뭣 하러 차를 끌고 나왔담.”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물론 이들의 생각대로 도로를 확장하면 그 구간은 시원스레 달릴 수 있고, 남들이 차를 몰고 나오지 않는다면 혼잡을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이 실현되기 위해선 과잉 투자라는 비난을 감수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누군가 먼저 자신의 승용차 통행을 포기하는 배려가 선행돼야 한다. 누군가가 먼저 손해를 감수한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러한 신경전은 모든 통행 참여자들을 마치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에 빠진 것처럼 곤혹스럽게 만들곤 한다.

운전자 각자에게는 승용차를 몰고 나오는 것이 이로운 일일 수 있지만 전체 도로 이용자에게는 혼잡이 야기돼 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 누구는 나와도 되고 누구는 안 되는지 교통정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도로 이용자들은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남들보고 왜 차를 갖고 왔느냐고 푸념하기 전에 자신의 판단이나 행동부터 되돌아볼 필요가 있고, 도로 확장을 요구하기 전에 세금을 더 낼 각오부터 해야 한다.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도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모두 도로를 만들고 넓혀 주진 않는다. 도로의 설계 기준을 토대로 수요를 감안해 적정한 수준의 도로 시설을 공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예산이나 용지 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도로 건설 대신 통행 수요를 조절하는 이른바 교통 수요 관리 정책을 시행하기도 한다. 여러 유형의 수요 관리 제도 중에 가장 직접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안 가운데 하나가 바로 ‘탄력요금제’인데, 이는 출퇴근 시간대 같은 혼잡한 때와 그렇지 않은 시간의 요금을 달리 정하는 요금제로, 친환경적인 제도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는 아직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류에 역행하는 ‘출퇴근 요금할인제’를 시행함으로써 그린 하이웨이를 구축하는 데 엇박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민원 등 이해관계의 조정이 쉽지 않은 탓이다.

이제는 ‘내가 못 가면 너도 못 간다’는 발상에서 좀 벗어날 필요가 있다. 내가 급할 때 상대가 양보하고, 상대가 급하면 내가 양보할 수 있는 관계로 나가야 한다. 이러한 조정은 개인 간의 약속으로는 불가능하다. 요금 제도를 통해 통행자들이 예측과 계획이 가능하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렇지만 요금 정책을 통해 수요를 관리하는 방안은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으므로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 통행선택권을 제약받는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책도 함께 강구할 필요가 있다.

통행료 제도는 어느 일부 통행자에게만 유리한 제도여서는 안 된다. 이것은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뿐 아니라 도로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이익이 되어야 한다. 요금 제도를 환경친화형으로 바꿔 건설비를 줄인다면 예산을 아낄 수 있고, 혼잡을 줄이면 에너지나 환경 측면에서도 보탬이 될 수 있다. 정부 정책 당국과 고속도로 이용자 모두 현명한 판단을 통해 곤혹스러운 도로의 딜레마에서 하루 빨리 빠져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