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독자권익위원 칼럼] 작은 것으로 큰 것을 보여라

입력 2010-06-22 21:31


독자권익위원회의 6월 회의는 신났다. 참석 위원들은 지면에 대한 까칠한 비판과 튼실한 대안은 아랑곳없이 회의 내내 월드컵 승전보를 되새김질하기에 바빴다. 판 벌리자마자 거둔 통쾌무비의 승리. 그리스와의 일전은 더도 덜도 아닌 1면 머리기사의 제목 ‘막힌 사회를 뚫다…벼락같은 축복의 슛!’이 대변했다. ‘너무도 순식간의 일이라 감격이 뒷북을 쳤다’는 함민복 시인의 관전기는 너스레가 아니었다. 위원들은 무뎌진 혀끝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채 한국의 분전을 칭찬하느라 입안의 침이 말랐다.

그날 위원들의 ‘직무유기’는 탓할 일이 아니다. ‘기분 호전 효과(Feel Good Effect)’라는 말도 있잖은가. 월드컵이 국민에게 주는 즐거움은 기회비용으로 따져 3조6434억원에 이른다는 통계까지 나왔다. 그리스전은 속된 말로 ‘기분 째졌다(Feel so good)!’ 주머니에 들어온 돈 한 푼 없어도 승리에 도취한 위원들의 인심은 돌연 넉넉해졌다. 한 달 간 국민일보에서 읽은 갖가지 기사에 너도나도 푸진 점수를 매기며 흐뭇해했다.

이를테면 이런 기사들이다. ‘정운찬 총리의 건의 못한 쇄신안’은 정치부 데스크의 설명대로 재빠른 취재 덕분이다. 기자는 땐 굴뚝에서 나는 연기를 일찌감치 포착했던 모양이다. 특종과 속보는 취재기자의 발달한 후각과 잰 걸음, 그리고 촘촘한 네트워크에서 이뤄진다. ‘거사설’로 포장한 이웃 언론에 비해 세련성은 밑졌지만 기민한 착목은 위원들의 공감을 사고 남았다. 지난달 발 빠르게 보도한 ‘어뢰에 남은 글씨’와 함께 국민일보의 취재력을 가늠해볼 만한 기사였다.

‘And’ 섹션은 이날 회의에서도 주목거리였다. 심상찮은 기획과 때깔 나는 기사로 독자들의 시선을 뺏은 지 오래 된 복덩이다. 위원 한 분은 여의도연구소 김현철 부소장의 분석을 흥미롭게 보았다. ‘야당도 인정하는’ 여론조사로 여의도연구소가 지방선거의 결과를 예측했으니 그 뒷얘기는 응당한 관심사다. 대남방송 요원 출신인 탈북자의 얼굴 감춘 인터뷰 기사도 독자들의 호기심을 채워줬다. 이참에 대북방송의 뜨뜻미지근한 행보를 돌아보게 했다. ‘택시에 버려진 신생아’ 기사는 문체의 색다름이 눈에 띄지만 조급한 감동 연출은 옥에 티였다. 신생아의 얼굴이 실린 편집은 숙고했어야 옳았다.

‘소중현대(小中顯大)’는 지면이 너르지 않은 국민일보의 독자들이 바라는 바다. 곧 ‘작은 것으로 큰 것 보이기’다. 이 말은 이 신문 저 신문이 다 쓰는 기사에 너무 맘 쓰지 말라는 권유이면서, 작은 실마리에서 큰 줄거리를 뽑아내는 구성력과 전조나 기미를 포착하는 예민성을 무기로 영양가 실한 기사를 꾸며보라는 독촉이기도 하다. 그런 기사를 쓰게 하는 약발은 상상력이다. 적실한 예를 6월의 지면에서 읽었다. 출판동네의 자잘한 소식에 불과한 ‘서점가의 노무현 서적’을 조근조근 분석해 선거 결과를 되짚어본 기자 칼럼이 그것이다. 기자는 보수의 상상력 빈곤과 진보의 간단없는 탐색에 눈 돌려 고개 끄덕일 만한 추론을 내놓았다. 팩트와 상상은 척지지 않고 어깨를 겯는 사이라고 이 칼럼은 말했다.

다시 월드컵 기사로 돌아간다. 충동에 휘둘리지 않는 신중파는 월드컵의 블랙홀 효과를 걱정한다. 천안함은 더 깊이 잠기고, 스폰서 검찰은 꼬리를 감추고, 세종시는 물러서고, 4대강은 갈피를 잃는다는 것이다. 마침맞게 국민일보는 월드컵을 맞은 여야의 셈법을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월드컵의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은 태부족이다. 오늘의 스포츠는 힘이 세고 외연이 넓다. 여기서도 ‘소중현대’의 기지가 필요하다. 그나마 다행은 국민일보가 희망의 메시지에 방점을 둔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전에서 패배한 날, 국민일보의 제목은 ‘괜찮아! 나이지리아 잡으면 된다’였다. 소심한 객관보다 대담한 희망이 차라리 낫다.

지금 쓰는 이 글은 나이지리아전 결과가 나오는 날 실린다. 미리 마감한 까닭에 필자는 16강 진출에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모른다. 다만 국민일보의 제목은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놓지 않는 쪽이라는 것을 믿는다. 이 점 독자와 내기해도 좋다.

손철주 학고재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