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방미인 구혜선 ‘요술’로 영화감독 신고식 당신은 욕심쟁이 우후훗!
입력 2010-06-22 17:33
‘감독 구혜선’은 ‘배우 구혜선’보다 편안해 보였다. 그는 “감독으로 인터뷰하는 게 편하다”고 했다. “배우로 인터뷰하면 다른 배우나 스태프에게 피해를 줄까 조심하게 되는데 감독은 내가 다 책임지니까 편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화 ‘요술’로 장편 영화 데뷔작을 신고한 구혜선(26)을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영화감독을 하면서 능글맞아졌다”고 말문을 열었다. “전에는 어린데다 배우라 닫힌 부분도 있었어요. 그런데 영화작업 하면서 사람들과 관계하는 법을 많이 배웠어요. 절대로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요. 그게 돼야 좋은 작품이 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구혜선은 “시간이 지날수록 능청이 느니까 스태프들이 나중에는 기가 막혀하더라”고 웃음을 터뜨렸다.
‘요술’은 예술학교에 다니는 세 남녀의 이야기다. 천재 첼리스트 정우와 그에게 열등감을 가진 다른 첼리스트 명진, 그리고 둘 사이에 있는 피아니스트 지은이 등장한다. 지은이 작곡한 악보 요술을 두고 정우와 명진은 갈등한다.
‘요술’은 스토리 전개가 매끄러운 편이 아니다. 구혜선은 ‘쿨하게’ 이를 인정했다. ‘요술’의 모티브는 첼리스트 송영훈의 공연 관람이었다. 사람들이 음악을 들으면서 머릿속으로는 특정한 기억을 상상하는 모습을 영화로 표현해내고 싶었다. “음악을 먼저 정하고 거기에 이야기를 삽입하는 형식으로 만들었어요. 기승전결이 있는 드라마보다 이미지 형상으로만 기억되는 걸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플래시백 기법을 많이 사용했고요. 관객이 좀 당황하실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가 ‘요술’에서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음악이다. 영화의 형식을 색다르게 한 것도 음악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싶어서였다. ‘요술’에는 구혜선이 지난해 직접 작곡한 곡을 묶은 소품집 ‘숨’에 수록된 곡이 계속 흐른다. 이밖에도 유재하의 ‘그대 내 품에’, 민요 아리랑을 재해석한 퓨전 아리랑, 리스트의 ‘사랑의 꿈’ 등 익숙한 음악이 영화 내내 귀를 즐겁게 한다. 공통점이 있다면 모든 곡이 보사노바풍으로 편곡됐다는 점이다. 구혜선은 “서정적이면서 극으로 치닫지 않는 멜로디를 좋아한다”며 자신의 음악적 취향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한 시간 반짜리 공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바람대로 ‘요술’은 음악적으로 만족감을 준다.
이제 막 관객과의 대면을 앞둔 초보감독은 벌써 다음 작품을 구상 중이다. “평생 사랑만 하고 살아야하는 뱀파이어 소녀의 이야기를 그릴 거예요. 공포영화가 아닌 아주 예쁜 얘기가 될 거예요. ‘요술’처럼 어렵지 않게 만들 생각이에요.” 그는 “이번 영화보다 더 저예산으로 해야 할 거 같아서 걱정”이라고 엄살을 부렸다. ‘요술’은 4억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구혜선은 자신에게 영화감독의 꿈을 심어준 고 정승혜 영화 아침 대표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는 “처음에 시나리오 보여드렸을 때 엉망이라서 갖다버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다시 시키시더라. 가능성보다는 하고자 했던 마음을 높이 사셨던 거 같다”면서 “처음에는 마음대로 해도 되고, 다음부터는 소통하라고 하시더라”고 추억했다. ‘요술’은 24일 개봉한다. 15세가.
글=김준엽, 사진= 김지훈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