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하나님-김종찬 희망의소리 대표 전 KBS 집중토론 진행자] 벌거벗은 거지가 돼 그 분 품에 다시 안겨

입력 2010-06-22 17:27


저에게 돌을 던지십시오. 어떤 경우에도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말아야 하는 사람이, 이렇게 다시 나와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8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분당파크뷰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의 처벌을 받았을 때, 저는 저 자신을 이미 사형에 처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때 죽은 것이지요. 진실로 제 목숨을 끊으려고 작정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삶에 대한 미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막막한 광야와도 같은 세상에 가족들을 남겨두고 혼자서 떠나는 것은, 무책임과 이기심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바로 그 무렵, 지인을 돕는다고 선 보증이 잘못되어 전 재산이 남김없이 사라져 버렸거든요. 만약 보증사고가 나지 아니하고, 가족들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물질이 있었다면, 저는 이미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50여년 평생에 처음 제게 찾아온 가난은 생명의 원천이었던 셈입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살아야 했으니까요. 제가 해왔던 옛 일을 버리고 새 일을 찾기란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하루하루의 삶을 위하여, 돈을 번다는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8년 동안 열두 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지요. 때때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았던 적도 여러 번이었고요.

가족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하는 저는 눈물을 보일 시간도, 공간도 없었습니다. 살아야 한다는 엄혹한 현실이 얼마나 진실한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희로애락을 느낀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깨달은 것도 그 무렵입니다.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절박한 현실 앞에서는, 살기 위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늦어도 한참 늦은 이 깨달음이 저를 몹시도 괴롭혔습니다. 너무도 부끄러워서 바깥출입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집에 처박혀 있던 저는 몇 년 동안 집안에 굴러다니던 책 한 권을 읽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읽기를 권한 지 오래이지만 읽지 않고 묵혀두었던 책입니다. 이재철 목사의 자기고백서인 ‘나의 고백’입니다. 저자와는 35년 된 관계이고, 그런 까닭에 그의 자기고백이 그렇고 그러리라고 여겨져서 읽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책은 저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모르던 이야기가 적혀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너무도 잘 아는 이야기가 너무도 적나라하게 적혀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진행되는 벌거벗은 자기고백 앞에서 저는 두려웠습니다. 마구 떨렸습니다. 그리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사는 게 거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나간 50여년의 삶을 지울 수만 있다면 깡그리 지워버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저 자신을 기억할 수 없는 곳으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참으로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말이 헛되지 않음을 알면 알수록 제 헛된 삶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 거북함과 고통이 제 생각과 말과 행동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저를 발견하고 저도 놀랐습니다. 주위에서도 제가 이상해졌다고 했습니다. ‘나의 고백’이 하나님을 만나게 한 통로가 되다니, 저는 하나님의 계획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의미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때를 기다리시며, 늘 저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를 치고 치고 또 치셨던 하나님을 말입니다.

저는 어리석은 탕자처럼 옛 옷을 벗고 벌거벗은 거지가 되어서야 아버지 품으로 돌아온 것이지요. 지금도 변함없이 가난하여 하루하루가 힘들고 돈 걱정 빚 걱정에 영일이 없지만, 엉터리 지식인으로 곡학아세하고, 호화사치하며 껍데기로 살지 않고 있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매일매일 새살이 돋아 새사람이 되어 살 수 있도록 계속 돌을 던져 주십시오.

정리=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

● 김종찬씨의 글은 인터넷 미션라이프(missionlife.co.kr)에 연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