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인강 (17) 성경 통독 병행하자 그토록 어렵던 수학도 차츰 이해

입력 2010-06-22 17:21


어머니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날개 없는 천사였다, 내가 아파하면 통곡하셨고, 기뻐하면 춤을 추셨다. 어머니는 한평생 남편과 자식을 위해 온몸을 내놓으셨다. 당신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었다.

“어미 걱정일랑 말고 얼른 박사학위 따서 들어와야지.”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하셨지만 아들을 만나러 버클리까지 오셨다. 1주일이 1시간보다 짧게 지나갔다. 어머니를 배웅하던 날은 간밤에 잠을 못 이뤘기 때문인지 아침부터 바튼 기침이 나왔다. 비행기가 결항이라도 돼 어머니의 귀국이 좀 늦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를 실은 비행기는 야속하게도 1분도 틀리지 않고 제 시간에 이륙했다.

버클리에서 학위 과정은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았다. 1학년 때는 기본과목들을 수강했다. 그때 기하위상을 하는 우리들에게는 더스턴(W Thurston)과 그로모프(M Gromov)라는 두 교수가 유명했다. 이들이 써놓은 논문이나 책들은 난해하기로 소문이 났었다. 그들의 뛰어난 통찰력과 천재성은 논문의 한 줄, 한 줄에 담겨 있었다.

박사과정 학생들은 그들의 논문 중 한 줄을 몇 년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곤 했다. 나는 주로 더스턴의 세미나에 참석했는데 처음 5분 정도는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했지만 그 후는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스스로에게 수학자로서의 자질이 있는 것일까 등에 대해 고민했다.

나는 그가 써놓은 강의록을 읽기로 결심했다. 3명이 매주 한 번 모여 처음부터 읽었다. 그의 책은 온간 상상력을 동원시켰다. 한 줄을 어렴풋이 이해하는데 어떤 때는 하루, 아니면 며칠씩 걸렸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며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학적 상상력을 동원했다. 어둠 속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나가는 방법을 체득하기 시작했다. 그 책을 다 읽는데 2년이 걸렸다.

“적당히 공부해 학위 받으려면 포기하세요. 취직하기 위해 박사학위 취득하려는 사람들 많아요. 나는 그런 사람을 도와주지 않아요. 그러니 일찌감치 생각을 바꾸는 게 좋을 겁니다. 어차피 졸업하기 어려우니까.”

나의 지도교수 카슨(A Casson)은 독특한 분이었다. 한국 대학의 문화로는 상상이 안 가는 사람이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철저히 혼자 공부할 것을 요구했다. 어떠한 아이디어도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나 홀로 수학자가 되는 법을 가르쳤다. 처음 박사과정에 들어온 학생에게는 무리한 요구였다. 그의 의도는 분명했다. 진정한 수학자는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수많은 실패를 통해 원리를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설명했다. 2년간 나는 다시 긴 어둠의 동굴 속을 통과했다. 어떤 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성경을 수없이 통독하며 영적인 훈련도 함께 쌓았다. 태산보다 높아 보이던 그 많은 문제들도 하나 둘 풀리기 시작했다. 물론 수많은 좌절과 시행착오를 넘어서면서부터다. 빛이 있는 방향이 어느 쪽인지를 감지하는데 5년이 걸렸다. 처음엔 한 문제를 푸는데 2∼3년이 걸렸다. 최근에 해결한 더스턴의 가설 중 하나는 3∼4년이 걸렸다.

그랬다.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수학은 참으로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외로운 길이다. 하지만 나에겐 카슨보다 훨씬 더 위대한 능력 있는 분이 도와주셨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 분은 영원한 나의 스승, 이 천지간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이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