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16강] “슈퍼 이글스, 내가 요리해 주마” 박주영, 아르헨전 자책골 ‘속죄포’ 별러

입력 2010-06-21 18:24

박주영(25)의 어깨가 무겁다.

17일 아르헨티나전에서 자책골로 선제골을 내줬고, 2006년 독일월드컵 조별리그 스위스전에선 결승골의 단초가 된 프리킥을 허용했었다. 한국 대표팀 간판 골잡이가 월등한 경기력에 어울리지 않게 중요한 경기에서 골을 헌납한 셈이다. 이런 탓에 월드컵 불운이 박주영을 쫓아다닌다는 말까지 나돈다.

23일 남아공 더반에서 열리는 나이지리아전은 박주영에겐 불운을 날릴 기회다. 박주영은 이미 2005년 6월 네덜란드에서 ‘슈퍼 이글스(막강한 독수리들)’ 나이지리아의 날개를 꺾고 역전극을 연출한 적이 있다. 20세 이하 선수들만 참가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한국은 두 번째 경기로 맞붙은 나이지리아에 선제골을 내주고 막판까지 1-0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후반 종료 1분 전 프리킥 상황에서 박주영이 오른발로 감아 찬 공은 수비벽을 넘어 나이지리아의 골문 왼쪽 구석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동점골이었다. 이후 한국은 상대에게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후반 추가 시간 박주영이 수비수들 사이로 낮게 깔아 찬 슈팅은 다시 한 번 나이지리아 골문을 위협했다. 이때 골키퍼의 손에 맞고 튕겨 나온 공을 왼쪽에서 달려온 백지훈이 왼발 슈팅으로 역전골을 터뜨리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박주영이 동점골을 넣은 지 3분 만이었다. 박주영은 앞서 후반 시작과 함께 얻은 페널티킥을 실패해 득점 기회를 날렸었다. 그대로 경기가 끝났다면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쓸 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기 도중 왼쪽 팔꿈치 뼈가 빠졌다. 평정심을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박주영은 오히려 투혼을 발휘해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번 나이지리아전에 임하는 박주영의 처지는 당시와 비슷하다. 아르헨티나전에서 자책골로 완패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은 상당한 압박이다. 게다가 남아공월드컵을 준비하던 오스트리아 전지훈련에서 왼쪽 팔꿈치 뼈가 다시 빠졌다. 통증은 사라졌지만 최근 부상 부위에서 물을 빼냈다고 한다.

허정무 감독은 나이지리아전에 박주영과 염기훈을 투톱으로 내보낼 계획이다. 아르헨티나전에서 단독 최전방 공격수로 나섰던 박주영은 상대 진영에서 고립되기 일쑤였다. 새 전형은 상대 수비수들의 시선을 분산해 박주영의 숨통을 열어준다. 전술 훈련에서 허 감독은 박주영에게 역습 기회를 잡으면 빠르게 침투해 마음 놓고 슛을 날리라고 주문했다. 골잡이 박주영의 역할은 변함없다는 뜻이다.

박주영은 최근 대표팀 훈련에서 전과 다름없이 활력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훈련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박주영은 “아르헨티나전에서 잘못한 실수는 인정하지만 말보다 나이지리아전에서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다음 경기에서 반드시 설욕하겠다는 각오다. 5년 전 최악의 상황에서 투지를 불태우며 되살아난 박주영이 이번에도 불굴의 투혼으로 나이지리아를 꺾고 팀을 16강으로 이끌지 주목된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