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성매매업소 13곳 운영·탈세 42억·차명계좌 73개·형사처벌 ‘0’… 강남 ‘밤의 제왕’이 사는 법

입력 2010-06-22 00:16

서울 강남과 북창동에서 13곳의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밤의 제왕’으로 불린 이모(38)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21일 미성년자를 고용해 성매매를 시키고 42억원대의 세금을 빼돌린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등)로 이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씨가 바지(명의) 사장으로 내세운 박모(38)씨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경찰은 이씨의 자금관리인 임모(34) 함모(31)씨 등에 대한 보강수사를 벌여 조만간 구속영장을 신청하기로 했다. 이씨에게 통장 명의를 빌려준 김모씨, 업소 종업원, 성매수사범 등 46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그러나 이씨가 10년간 불법 영업으로 수천억원대 매출을 올리면서도 한 번도 사법처리된 적이 없어 비호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밤의 제왕=1997년 서울 북창동 유흥업소 밀집 지역. 20대 청년이 지나가는 남성들을 쉴 새 없이 쫓아다니며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밤의 제왕으로 불렸던 이씨의 화려한 밤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호객꾼 생활 3년 만인 2000년 북창동에서 업소를 열었다. 2003년에는 북창동 방식으로 방이동에 2개 업소를 개업하면서 강남에 진출했다. 그는 이른바 북창동 스타일의 A∼D코스 방식을 강남에 처음 확산시킨 인물로 알려졌다. A∼D코스란 미성년자가 포함된 여종업원들에게 손님이 원하는 유사성행위와 성행위를 하도록 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씨가 운영하는 업소들은 성황을 이뤘다.

이씨는 서울에 업소 13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경찰은 이보다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업소들의 매출액은 최근 5년간 36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논현동의 한 업소에서만 2007년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364억여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씨는 벤틀리 벤츠 아우디 등 외제 차량을 굴렸고, 매달 마카오 호주 홍콩 등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또 장인이나 처제 등 가족 명의로 반포동 광장동 동부이촌동에 47~65평의 고급 빌라와 아파트를 사들이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다. 하지만 이씨는 자신의 업소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의 월급은 제때 주지 않았다.

이씨 몰락이 시작된 건 지난 3월. 서울 서초경찰서는 가출한 이모(18)양 실종 사건을 수사하면서 이양이 이씨가 운영하는 업소에서 성매매를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이씨는 “나는 업소 주인이 아니다”고 발뺌해 풀려났다.

◇불법·탈법으로 세운 룸살롱 왕국=2008년 이씨는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수사를 받은 적이 있다. 이후 이씨의 영업과 자금 관리는 더욱 은밀해졌다. 운영하는 모든 유흥업소에 바지사장을 세웠다. 수익은 자금관리인을 시켜 차명계좌에 입금시켰고 비밀 경리 사무실을 운영했다. 이씨는 친지와 노숙인 등 32명을 동원해 만든 차명계좌 73개를 범행에 이용했다.

자금관리인은 차명계좌의 현금카드로 시중은행 등의 현금인출기를 이용해 돈을 입출금하는 수법을 썼다. 경찰은 꼬리표가 없는 돈 흐름을 대부분 쫓지 못했다. 이번에 꼬리가 잡힌 이씨의 차명계좌는 2008년 1월부터 지난 3월까지 사용된 것에 불과하다.

이씨는 경찰 수사에 대비, 자신이 운영하는 유흥업소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일을 하는 것처럼 매출 장부를 조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가 운영한다고 주장했던 H유통은 사업자 등록조차 돼 있지 않았지만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이씨 사무실에는 H유통 간판이 부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방식으로 이씨는 305억8000만원 상당의 불법 수익을 올렸고 세금 42억6000여만원을 탈루했다. 서울지방국세청은 경찰이 입수한 이씨의 이중장부를 토대로 탈루액을 추산했다. 하지만 장부가 이씨 소유 업소 중 5곳에 대한 것인데다 기간도 제한적이어서 수사가 확대될 경우 불법 수익은 훨씬 더 늘 수 있다. 서울지방국세청은 포탈 세액에 가산세를 포함해 이씨에게 79억여원을 과세할 예정이다. 이씨의 형이 확정되면 포탈 세액의 5배인 210억여원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경찰 유착 의혹 못 밝혀=4개월에 걸친 경찰의 강도 높은 수사에도 불구하고 이씨와 경찰의 유착 의혹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은 “이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유착 경찰 등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청문감사관실은 이씨와 통화한 것으로 드러난 경찰관 63명을 불러 유흥업소 업주와 통화한 경위를 따진 뒤 징계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서울청 형사과는 경찰관 63명을 포함해 구청 등 공무원들에게 이씨가 금품을 제공했는지를 집중 수사할 계획이다.

업계에선 단속 공무원들에게 ‘관처리’(로비)를 잘 하기로 유명한 이씨를 수사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돌고 있다. 실제 이씨에 대한 수사는 지난 3월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다. 당시 경찰은 이씨를 긴급체포했지만 검찰은 “긴급성이 부족하다”며 긴급체포를 승인하지 않았다. 현재로선 경찰 역시 이씨의 진술에 기댈 수밖에 없는 만큼 로비 수사가 제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김경택 조국현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