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동재] 절망이 부르는 범죄

입력 2010-06-21 17:46


“어린 희생자들과 부모들에게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전국적으로 학교 안전을 강화하는 조치를 즉각 취하는 것과는 별도로 우리는 ‘묻지마 칼부림’ 범죄의 심층적인 원인을 파고들어 해결할 필요가 있다.”

지난 5월 13일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홍콩의 펑황(鳳凰)TV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원 총리가 칼부림 범죄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그동안에도 중국은 ‘도대체 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어이없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심했다. 멍젠주(孟建柱) 중국 공안부장(장관급)은 원 총리의 발언이 있기 하루 전인 12일 공안부 및 교육부와 긴급 화상회의를 열고 “모든 수단을 강구해 어린이의 안전을 지키라”는 지시를 내린 터였다.

최초의 사건은 지난 3월 23일 푸젠성 난핑시에서 일어났다. 이 지역 주민인 정민성(鄭民生·41)이 등교하던 초등생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9명을 숨지게 하고 4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공포는 그때부터 확산되기 시작됐다. 곳곳에서 비슷한 사건들이 잇따라 벌어졌다. 4월 28일에는 초등학교 교사인 천캉빙(陳康炳·33)이 광둥성 레이저우시의 한 초등학교에 난입, 16명의 사상자를 내는 등 동종 범죄는 계속됐다.

두 달 동안 산시성과 장쑤성 등 6곳에서 유사한 사건들이 발생해 무려 90여명이 죽거나 다쳤다. 범인들의 상당수는 실직했거나 사회에 깊은 불만을 지닌 30∼40대 남성이었고 범행 장소로 초등학교나 유치원을 골랐다. 이들은 입을 다문 채 품에서 흉기를 꺼내 닥치는 대로 어린이와 교사들을 공격했다. 자신들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아이들은 고스란히 폭력에 노출됐고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중국 정부의 대처 방식은 강경·단호하다. 처음 칼부림을 했던 정민성은 푸젠성 최고인민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4월 28일 총살형을 당했다. 천캉빙도 지난 11일 법원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았다. 한 달여 만에 모든 사법처리 과정이 마무리되는 것은 중국에서도 이례적이다. 하지만 스스로가 ‘사회의 열등아’라는 생각에 빠져 있는 숱한 잠재적 범죄자들의 돌출 행동을 원천봉쇄하기는 쉽지 않으리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급기야 지난 16일 또 다시 사건이 터졌다. 광둥성 자오칭시의 한 도로에서 이 마을에 사는 즈쩌밍(植澤明·19)이 길 가던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주부 1명이 숨지고 11명이 부상했다. 목격자들은 “그가 갑자기 흉기를 꺼내 행인들을 향해 마구 휘둘렀다”고 전했다.

영국의 데일리텔레그래프는 “중국처럼 단기간에 거대한 변화를 겪은 국가는 그리 많지 않다”며 “오늘날 중국인들이 고독·소외·폭력을 경험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지의 범죄심리학 전문가들도 “범인들의 대부분이 범행 후 자살을 기도하고 있다”며 “이는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깊은 절망감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중국의 빈부 격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사실은 꽤 널리 알려져 있다. 2008년 현재 13억3000여만명에 달하는 총 인구의 3%가 사회 전체 부(富)의 41.4%를 차지한다는 통계도 있다. 흔히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0.4를 초과하면 사회적 동요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지니계수는 0∼1 사이의 값을 갖는데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정도가 높음을 의미한다. 중국의 지니계수는 2009년 이미 0.47에 달했다. 쑤하이난(蘇海南) 중국노동학회 부회장은 최근 증권업과 목축업간 소득 차이가 무려 17배에 달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중국 사회가 안고 있는 적지 않은 고질적 사회병리 현상에 대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제시한 해법은 지극히 원론적이다. “궁극적으로는 사회의 불공정 문제를 해소하고 계층간 빈부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조화로운 사회의 구현이라는 희망사항을 누누이 강조해 온 중국 지도부가 어떤 처방전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이동재 선임기자 dj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