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 폭행 피해자는 건강보험 적용 대상”

입력 2010-06-20 21:24

다른 사람의 범죄로 다쳤다면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폭행 사건으로 다쳤을 경우 일방적 폭행 또는 쌍방 폭행과 관계없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과 관행은 잘못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판결이다.

대법원1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20일 폭행 피해는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A병원의 말을 듣고 B병원에 부상경위를 거짓으로 알려 건강보험 혜택을 받은 혐의(사기 등)로 기소된 김모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가 B병원의 치료를 받으며 거짓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김씨의 상해는 자신의 범죄행위가 아닌 가해자 폭행에 의한 것”이라며 “국민건강보험법상 보험급여가 제한되는 보험사고는 환자 자신의 범죄행위가 주된 원인이 돼 사고가 발생한 경우를 말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른 사람의 범죄로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보험급여가 제한된다고 국민건강보험법을 해석하면 가해자가 경제적 무능력자인 경우 범죄로 피해를 입고도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된다”며 “이는 국민건강보험법의 입법 목적과도 배치된다”고 판시했다.

김씨는 2007년 3월 서울 서초동에서 교통사고 시비 끝에 남모씨의 폭행으로 왼쪽 쇄골이 부러지는 전치 8주의 부상을 당했다. 근처 A병원에 3일간 입원한 김씨는 병원 측으로부터 “본인의 과실에 의한 부상은 건강보험 적용대상이지만 다른 사람에 의한 부상은 적용대상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남씨의 행위가 국민건강보험법 48조1항에 규정된 보험급여를 제한할 수 있는 사유인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에 기인하거나 고의로 사고를 발생시킨 경우’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결국 김씨는 인근 B병원으로 옮긴 뒤 “산에서 내려오다 부상당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보험혜택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도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으나 재판과정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사람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한 혐의에 유죄를 인정해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피해자에게 보험급여를 지불하고 나중에 가해자에게 손해배상 청구권을 갖도록 하라는 취지의 판결”이라고 말했다.

건보공단 김경술 보험급여과장은 “타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한 경우에는 국민건강보험법상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다”며 “하지만 쌍방 폭행일 경우 피해자의 진료비를 가해자가 지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건보공단은 쌍방 폭행 피해자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았다면 가해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해 진료비를 받아내고 있다.

건보공단은 폭행 가해자에게 진료비 청구서를 보내 환수 절차를 진행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급여나 재산에 대해 압류한다. 하지만 이 기간에도 가해자는 진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이제훈 문수정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