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오 기자의 남아공 편지] 할렘가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입력 2010-06-20 20:16
‘입던 옷까지 다 벗고 나오는 곳. 5분 이상 걸으면 강도를 당하는 범죄의 온상. 외국인을 죽여 불태우는 최악의 빈민가….’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가장 악명 높은 빈민가인 알렉산드라(Alexandra)에는 이런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다.
6시간 동안 위협 한번 안 당해
18일(현지시간) 현지 교민의 도움을 받아 찾아가 본 알렉산드라의 풍경은 그런 악명을 낳기에 충분해 보였다. 반쯤 부서진 벽돌과 녹슨 철판을 쌓아 만든 집에는 10명씩 모여 살고 있었고 그렇게 80만명의 인구가 거대한 빈민 부락을 형성하고 있었다. 흑인 남성들은 거리에서 하릴없이 앉아 있었고 허름한 집 대문 앞에서 꽃단장한 여성은 손을 흔들며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이곳 주민에게 월드컵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보였다. 거리에 들어서자 축구공을 이리저리 굴리는 어린이가 처음 눈에 들어왔다. “사진촬영해도 될까?” “얼마 줄 거예요?” 아이는 지갑에서 10란드(약 1500원)짜리 지폐를 꺼내주자 사진촬영에 응한 뒤 축구를 계속했다.
사진촬영을 위해 걷기를 반복하다 현지 흑인들의 주식인 팝(Pab:곡식을 찧어 만든 떡)과 고기를 파는 식당을 발견했다. 그곳으로 들어가 네 명도 먹고 남을 정도의 식사를 주문해 식당 주인과 함께 먹자고 권했다.
열악한 치안에 대해 묻자 식당 주인 시드니 음템부(60)씨는 “당신이 이상한 사람이라면 위험할 것이고 친절한 사람이라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은 옳았다. 이곳에서 체류했던 6시간 동안 한 번도 강도를 만나지 않았다. 위협하는 사람도 없었다. 구걸을 거부해도 “좋은 하루 보내라”는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알렉산드라 주민들은 짐바브웨 등 인접국 이주민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일자리를 빼앗겼다. 때문에 외국인 혐오증이 극에 달했다. 결국 2008년 5월 주민 폭동으로 이어졌고 이주민 70명이 희생됐다.
정부의 개입으로 어렵게 평화가 찾아왔고 주민들은 자율방범대를 구성하는 등 새로운 질서를 마련했다. 지역축구팀을 만들어 청소년을 마약과 음주, 흡연에서 구했다.
세계인의 잘못된 시선 문제
문제는 세계인의 시선이었다. 세계인의 눈에 남아공은 여전히 폐허로 뒤덮인 우범지역에 불과했다. 그 중에서도 중심도시에 위치한 알렉산드라는 흠집 내기 좋은 대상이었다.
월드컵 개막 전부터 남아공 곳곳에서 강력범죄가 발생하자 알렉산드라를 향하는 발길도 뚝 끊겼다. 지난 2년간 주민들이 부단하게 노력했지만 과거 새겼던 주홍글씨를 지우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6시간의 체류를 마치고 알렉산드라에서 나올 때쯤 한 경찰로부터 의미심장한 경고를 들었다. “허상과 악소문이 알렉산드라를 억누르고 있다. 당신의 도시도 언제든 이런 고통을 겪게 될 수 있다.”
요하네스버그=글·사진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