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드는 재건축·재개발 소송 행정법원 ‘비상’

입력 2010-06-20 18:52

밀려드는 재건축·재개발 관련 소송으로 서울행정법원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방법원 민사재판부에 접수됐던 사건들이 갑자기 행정재판부로 이송되며 벌어진 현상이다.



20일 현재 서울행정법원 11개 합의재판부에 계류 중인 재건축·재개발 관련 소송은 재판부당 20∼30건에 이른다. 이는 서울행정법원 전체 사건의 7∼10%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한 부장판사는 “지난해에는 한 재판부에 계류 중인 소송이 평균 3∼4건밖에 안 됐다”고 말했다.

갑자기 소송이 많아진 이유는 지난해 9월 있었던 대법원 판결 때문이다. 대법원은 당시 오모씨가 무악연립재건축조합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재건축조합이 결정하는 사안은 구속적 행정계획으로 행정처분에 속하므로 사건을 행정법원에 이송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건축조합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이 행정소송으로 분류됨에 따라 민사재판부에서 내려진 1·2심 판결은 없던 일이 됐다.

이 판례에 따라 각 지방법원 민사재판부에서 맡고 있던 사업시행승인무효 소송, 총회결의무효확인 소송 등의 사건들이 갑자기 행정법원 혹은 지방법원 행정재판부로 넘겨졌다. 2심까지 결론이 났던 전국 최대 재개발단지인 서울 가락시영아파트 사건도 대법원에서 파기돼 서울행정법원에서 1심을 다시 심리했다.

재건축·재개발 관련 사건은 사안이 복잡한 데다 건축과 관련된 전문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많다. 단기간에 사건에 적응해야 하는 행정부 판사들에겐 ‘비상’이 걸린 셈이다. 더욱이 서울행정법원에는 서울중앙지법과 서울 동·서·남·북부지법에 계류된 사건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서울행정법원은 쇄도하는 사건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재건축·재개발 쟁점 정리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TF는 각 재판부로부터 재건축·재개발 사건의 단계별 쟁점을 취합해 재개발 사업시행인가, 관리청계획, 정비구획지정, 청산절차 등에 관한 기존 판례와 학설을 검토하는 역할을 맡았다. TF는 조만간 결과물을 내놓을 방침이다.

TF를 통해 ‘매뉴얼’이 만들어지면 사건 처리가 보다 신속해지리라고 일선 판사들은 기대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 김우현 공보판사는 “TF에 참여한 판사들은 매일 야근을 하며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며 “연구 결과가 나오면 밀려드는 사건을 좀 더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