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 유혹·유흥가 취업 알선·범죄 모의까지… ‘가출 카페’ 청소년 범죄 온상
입력 2010-06-20 18:16
“가출 경험이 있어서 웬만한 건 다 알아요. 86년생 주민등록증도 있어서 잘 데 걱정 없으니 같이 일하고 외로움도 달래면서 사실 분 구합니다.”(네이버 A카페)
“이제 더 이상 PC방에서 자기 힘들어요. 방 있으신 분 아무나 연락주세요.”(다음 B카페)
국내 대형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가출 정보를 나누는 일명 ‘가출 카페’가 성행하고 있다. 그러나 가출 카페를 단속할 법적 근거가 없어 청소년들이 성범죄 등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범죄행위 조장하는 가출 카페=본보가 20일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 사이트에서 ‘가출’이란 단어로 검색한 결과 가출한 청소년의 커뮤니티로 사용되는 인터넷 카페는 250여개에 달했다.
청소년들은 인터넷 카페를 통해 잠자리나 동거인을 구한다는 글을 올리거나 유흥가 취업 알선 등의 정보까지 교환하고 있다. 잘 곳이 마땅치 않은 10대들은 모텔비 등 방값을 마련하기 위해 가출 카페를 통해 5명 정도씩 무리를 만들어 지내고 있다.
실제로 지난 8일에는 ‘홍기’라는 청소년이 한 인터넷 카페에 “남자 3명, 여자 1명이 같이 살고 있다”며 “15∼19세 여자 동거인을 구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 카페에는 동거인을 찾는 게시글이 올해에만 수백 건 올라와 있다.
가출 카페는 단순히 가출 통로가 되는 것을 넘어 각종 범죄의 온상으로 악용되고 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청소년들끼리 범죄 정보를 모의하는 공간이 되는가 하면 카페에 남겨둔 연락처로 인해 범죄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가출 카페를 개설한 뒤 찾아온 청소년들을 폭행하고, 인력사무소 등에서 강제로 일을 시킨 뒤 돈을 갈취한 20대 남성 4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앞서 1월에는 가출 카페를 통해 만난 유모(13)양 등 가출 청소년 60여명을 상습적으로 유인해 자신의 은신처에 억류한 20대 남성이 검거되기도 했다.
◇정부, “단속 근거 없다”=정부는 단속 근거가 없다며 사실상 가출 카페 관리에 손을 놓고 있다. 인터넷 불법·유해 사이트 적발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주관한다. 방통위가 단속한 사이트는 여성가족부에서 심사해 불법·유해 사이트 판정을 내리고 행정안전부를 통해 고시된다. 성매매 등 범죄 관련 사이트는 폐쇄되고, 음란물 등 유해 사이트는 금칙어로 지정돼 19세 이하는 검색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불법·유해 사이트 심의에서 가출 카페는 제외되고 있다. 자살이나 범죄 모의 등은 불법이기 때문에 단속할 수 있지만 가출은 범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출은 금칙어로도 지정되지 않았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전문 상담자들이 가출 카페에 상담이나 쉼터 정보 등을 제공하고 있어 금칙어 설정이 어렵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가출 카페에 성매매 알선 등 불법적인 글이 올라오면 단속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성매매 알선은 은밀한 형태로 연락이 오가고 있어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 단속 인원도 부족하다. 방통위 불법·유해 사이트 적발 모니터 요원은 계약직 직원 30여명이 전부다. 이마저도 음반 심의 업무와 병행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에서 운영하는 유해 사이트 모니터링 직원은 10명에 불과하다.
전웅빈 최승욱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