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전윤호] 한국축구, 희망봉에 닻을 내려라

입력 2010-06-20 17:52


졌다. 실력 차가 있었다. 그리스전 승리로 얻은 상승세가 아르헨티나까지 넘지는 못했다. 축구란 경기는 묘한 데가 있어서 특정 팀끼리 사이엔 전력 외의 변수가 존재한다. 아직 우리에겐 아르헨티나의 포스를 넘어설 만한 힘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팀 전력이 기대 이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나 일본이나 중국이 우리보다 전력이 약해서 우리에게 지는 것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자책골을 먹은 선수가 비난받지 말아야 한다. 문전 찬스를 놓친 선수도 최선을 다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혼자 적진으로 돌진해 상대 수비의 볼을 뺏어 한 골을 넣은 이청룡 선수에 대한 칭찬이다. 그리고 수많은 강슛을 몸을 던져 선방해낸 정성룡 골키퍼에게 찬사를 보내는 일이다.

애당초 우리의 목표는 아르헨티나에 대한 승리가 아니라 16강 진출이었다. 우리는 지금 차근차근히 그 목표에 접근해가고 있는 중이다.

패배 딛는 것이 진정한 승리

그리스와 나이지리아의 경기를 보면서 나는 희망을 봤다. 나이지리아의 개개인은 훌륭한 선수들이었지만 모두들 혼자 뛰고 있었다. 그들은 국가대표라는 생각보다는 자신을 앞세우는 것 같았다. 퇴장 당한 선수는 그렇게 됨으로써 선제골을 넣은 자신의 팀이 수렁으로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면 발길질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부상에 민감했고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한 번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이유이다. 우리가 나이지리아를 이기면 예선을 통과할 확률이 절대적이다. 나머지 세 팀이 물고 물려 골득실을 따진다 해도 우리가 불리하란 법이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고개를 떨군 채 땅을 봐서는 안 된다. 한 번의 승리에 도취된 사람들이 또 한 번의 패배에 얼마나 많은 비난을 쏟아낼 지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경기는 끝나지 않았고 우리에겐 실망보다 많은 더 큰 희망이 존재한다.

누군가 말했다. 최고의 영광은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패배를 딛고 일어나는 것이라고. 나는 다음 경기에서 박주영이 골을 넣고 환호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박지성이 적진을 헤집고 돌파하는 모습도 보고 싶다. 우리 선수들이 팀을 위해서 희생하면서 승리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니 지금은 한 번의 패배로 고개를 떨구고 바닥을 볼 시간이 없다. 비난은 비난을 부르고 실망은 실망을 부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첫 경기에서 진 뒤 포기하지 않고 승리를 일궈낸 그리스 선수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들 역시 어려운 조국의 경제상황 속에서 국민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열심히 뛰었던 것이다.

경기마다 다 이길 수 있다면 물론 좋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최강이라는 브라질도, 독일도, 우리를 이긴 아르헨티나도 그러진 못한다. 한때 세계를 주름잡던 프랑스도 무너졌다. 그것이 축구라는 괴물이 만드는 이야기들이다. 축구는 언제나 사람들의 기대와 예상을 배반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렇게 온 지구인이 월드컵에 열광하지 않았을 것이다.

16강 향해 진군가 부르자

이제 우리가 다시 세 번째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우리의 기쁨은 더욱 커질 것이다. 세계의 축구팬 눈도 놀라움으로 커질 것이다. 패배를 딛고 일어선 한국이 16강으로 진군했다는 기사가 세상을 덮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확률이 대단히 높다.

자 이제 나쁜 기억은 훌훌 털어버리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자. 약속의 땅 희망봉에 닻을 내리기 위해서는 준비할 일도 많고 추슬러야 할 일도 많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희망이 고개를 떨구지 못하게 할 것이다.



전윤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