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남호철] 안중근 의사 동상
입력 2010-06-20 17:55
꼬박 100년이 흘러갔다. 만 30세의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조선 통감부 제1대 통감(총독)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다음해 1910년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신 지.
안중근 의사는 마지막으로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다오”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뤼순 감옥 뒷산에 묻힌 그의 유해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찾지 못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를 기념하기 위해 2006년 1월 16일 하얼빈 중심지 유로백화점 옆에 세워졌던 동상도 중국의 철거 압력에 견디다 못해 지난해 9월 국내에 들어왔다. 하지만 동상은 여러 논란 속에서 제자리를 잡지 못하다가 두 달 가까이 지나서야 경기도 부천 안중근 공원(옛 중동공원)에 정착했다. 하얼빈에서 겪은 수모가 고국에서도 이어진 것이다.
서울 남대문로 5가 남산공원 기념관 앞의 안 의사 동상도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채 풍화와 침식에 신음하고 있다. 이 동상은 안 의사가 셔츠와 재킷, 코트를 입고 오른손에 깃발을 든 채 오른발을 앞으로 내민 모습이다. 1967년 청동으로 제작된 이래 40년 이상 비바람을 맞으면서 부식이 진행되고 균열까지 보이고 있다.
높이 4m, 기간부(밑기둥) 4m 등 전체 8m 높이의 동상 몸체 곳곳의 페인트층이 변색되거나 벗겨졌다. 여기에 먼지와 비둘기 등 새의 분비물로 오염까지 심하다. 깃발의 깃대는 부식으로 군데군데 움푹 패 있고 코트 깃에는 일부 조각이 떨어져 나간 자국이 나 있다. 공기 중 청동의 부식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동상의 수리와 관리 방식에 허술한 점이 있었던 아니냐는 지적도 받고 있다.
동상이 주물 돼 나오고 나서 청동의 화학적 표면 처리법 대신 단순히 페인트칠을 했다가 나중에 페인트가 벗겨지면 미관상 안 좋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압 살수기로 물 세척과 솔 문지름을 반복하면서 동상 표면 채색 층이 불규칙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서울시는 안 의사 동상을 10월말까지 새로 만들어 설치할 계획이다. 동상의 위치도 다시 짓고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관 입구로 조금 옮기게 된다.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일제 식민통치의 상징물인 조선신궁 자리에 서게 되는 것이다.
지난달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추진단도 본격 가동에 들어간 만큼 안 의사의 유해도 이른 시일 내에 발견돼 국내 의미 있는 자리에 안장되기를 기대해 본다.
남호철 차장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