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과 공포! 삶의 끝자락 우리들의 자화상… 두산아트센터 연극 ‘인어도시’
입력 2010-06-20 17:21
연극 ‘인어도시’는 한국인의 속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계속 비가 내리는 호스피스 병동 7002호에 죽음을 앞둔 환자들이 있다. TV가 안 나와서, 신문이 없어서, 휴대전화가 안 터져서 불만이다. 옆 사람이 시끄럽게 떠들어서 잠을 못자 불만이다. 투덜거리고 아옹다옹 다퉈도 이들은 병원에서 다들 잘 어울려 지낸다.
병원에는 기이한 소문이 하나 있다. 저수지에 사는 아구의 노래를 들으면 스스로 먹이가 되려고 나간다는 것. 뜬소문쯤으로 치부하지만 병실에 있던 정씨가 밤낚시를 하러 갔다가 아구에 물렸다면서 이상한 소리를 하자 다들 긴장한다. 여기에 혼수상태로 있던 이씨마저 벌떡 일어나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해 모두를 두려움에 떨게 한다.
공포가 다가오자 이들은 자기의 속내를 꺼내기 시작한다. 죽기 전에 삶을 돌아보는 회환이 아니다. 자신이 정당한 삶을 살았음을, 그래서 이런 죽음은 억울하다는 것을 강변하는 것이다. 한국전쟁을 지나며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유전자가 생겼고 압축성장을 지나오면서 뒤쳐지면 안 된다는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논리가 몸에 밴 한국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생기는 사회 속에서 피해의식과 위기감도 팽배하다.
고물상 사장인 염씨는 못 배운 한 때문에 아들의 교육에 집착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고물상에서 꿈을 키웠지만 염씨는 아들을 캐나다로 유학을 보내 엄하게 교육시켰다. 아들에게는 고물상에서 일하는 고통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가난과 무지의 대물림이 싫어 자녀교육에 올인하는 한국인의 자화상이다.
횟집 사장인 정씨는 항상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 온 몸에 비린내가 밸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해 부를 쌓았다. 그는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고 있다. 맨손으로 시작해 자수성가한 불굴의 한국인이다.
유일한 여성인 서씨는 남편에게 집착한다. 20년이 넘도록 김밥을 팔고 택시를 몰아 모은 돈으로 남편에게 헌신을 했다.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이들은 자신이 해온 것들을 내세운다. 하지만 어두운 면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은 언제나 불안하다. 염씨는 아들과 등을 돌렸다. 아들은 아버지의 고물상이 좋았지만 아버지는 공부를 강요했다. 아들은 탈선했고 아버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정씨는 명품으로 치장해 신분상승을 꾀하지만 몸에 밴 비린내는 없어지지 않았다. 직업에는 귀천이 있었다. 서씨는 희생을 명목으로 남편에게 집착한다. 끝까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강박 때문이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삶에 집착하고 자신이 이뤄온 것을 잃지 않으려고 한다.
저수지에 나타난 아구, 그리고 그들을 찾아와 마음 속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인어는 모두 이들의 불안이 만들어낸 상상의 존재들이다. 인어는 “니들의 머리가 날 이끌어 냈다”고 한다.
고선웅 연출은 “한국 사회는 너무 급격하게 변한다. 그래서 감정의 기복도 심할 수밖에 없다. 그걸 작품에 담아내고자 했다”면서 “피해의식의 치유까지는 안 되도 그걸 관조할 수 있는 여유라도 가질 수 있기 바란다”고 말했다.
‘인어도시’는 7월 11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공연된다(02-708-5001).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