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응원 감동 장애인은 고역… 서울광장 휠체어석, 공간 협소 불편

입력 2010-06-18 18:27

17일 오후 4시쯤 채희준(32)씨 등 중증장애인독립생활연대 회원 9명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을 찾았다. 광장은 남아공월드컵 한국과 아르헨티나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모인 인파로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채씨 일행은 대형 스크린이 잘 보이는 곳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경호원이 달려와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며 그들을 응원석 맨 앞쪽으로 안내했다.

휠체어 20개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협소한 공간에 노인 10여명과 자리를 함께했다. 화장실로 가는 길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멀리 떨어져 있어 혼자 다녀올 수가 없었다. 화장실 내부도 비좁아 휠체어를 타고 들어가면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채씨는 “지난 12일 그리스 경기 때는 장애인 구역이 따로 없어서 정말 고생했다”며 “그나마 이번에는 이렇게 자리를 따로 마련해 줘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서울 성북구 동선동 주택가.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을 마친 문애린(31·여)씨가 귀가를 서둘렀다. 뇌병변 장애 1급을 앓고 있는 그녀는 TV를 켜고 ‘나홀로 응원전’을 준비했다.

TV화면에는 붉은 물결의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손을 흔들고 서로 얼싸 안으며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거리로 나가 응원에 동참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지만 체념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의 아찔한 기억 때문이다. 그녀는 당시 서울 대학로에 거리 응원을 나갔다. 문씨는 당시 사람들과 어울려 ‘대∼한민국’을 외치고 ‘짝짝짝 짝 짝’ 박자에 맞춰 박수치면서 축제 분위기를 만끽했다. 가슴 속 깊이 ‘나는 대한민국 사람이다’는 감동이 충만했다.

하지만 감동은 곧 악몽으로 바뀌었다. 경기가 끝나자 문씨는 응원인파에 휩쓸리고 사람들에 치였다. 3시간여 동안 사람들에게 갇혀 꼼짝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었다. 이후 일주일간 몸살에 시달렸다는 문씨는 다시는 거리응원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4년 만에 월드컵 축제가 찾아왔지만 거리응원 주최 측의 배려 부족으로 장애인들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다. 실제 한강공원 반포지구, 여의도 한강공원, 신촌 등 서울시내 주요 거리응원 장소에 장애인석을 마련한 곳은 없었다. 새로운 거리응원 중심지로 떠오른 영동대로 역시 장애인용 간이화장실만 마련해 뒀을 뿐이다. 거리응원을 주최한 강남구청 관계자는 “장애인단체에서 공식적으로 연락을 받은 적이 없어서 따로 구역을 만들어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뇌병변 장애 1급 김정(31)씨는 “시민들이 함께 모여 대표팀 선수들의 이름을 외치고 응원하는 모습이 부러웠다”며 “월드컵 응원은 모두가 함께 즐기는 문화라지만 정작 우리(장애인)는 빠져 있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전웅빈 김수현 노석조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