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태형] 다시 길을 떠나며
입력 2010-06-18 17:39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납니다. 얼마가 될지 모르는 남은 인생은 초심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습니다.”
서울 화계사 주지인 수경 스님이 최근 ‘다시 길을 떠나며’란 글을 남기고 잠적했다. 화계사 주지 자리를 내려놓고 조계종 승적도 반납했다. 그의 진의는 알 수 없지만 섬광처럼 내 뇌리를 스친 단어는 ‘본질’이었다. 어떤 사람이 모든 것 내려놓고 홀연히 떠날 때에는 이유가 있다. 세상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죄를 지었거나, 본질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거나, 이 둘 중 하나인 경우가 많다.
수경 스님은 환경운동과 NGO 활동 등을 했던 불교계 명사다. 그런 그가 고백한다. “이대로 살면 제 인생이 너무 불쌍할 것 같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습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했을 것이다. 수행자의 삶에서 본질은 무엇인가도 수없이 되물었을 것이다.
자신의 ‘버킷 리스트’(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의 목록을 상징)를 작성해 보면서 그간 이 땅에서 분투, 노력했던 것들은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자신이 투여한 삶이 본질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온 순간, 그는 다시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가던 길 멈추고 ‘다시 길을 떠나는 것’은 종교 여부를 떠나 모두가 한번쯤은 인생 가운데 시도해야 할 일이다. 목회자들도 마찬가지다. 이 땅의 번다한 일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목회자로 만들어 준 그 본질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것이다.
‘대접받는 목사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진정한 변화를 위한 본질의 목회를 펼치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나야 한다. 본질을 향해 ‘다시 길을 떠나야 한다’는 것은 유진 피터슨, C S 루이스, 마틴 로이드 존스 등 기독교계 거목들도 강조한 이야기다. 사랑의교회 원로 옥한흠 목사도 늘 ‘본질을 향한 길을 걸어라’고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스스로가 길이 되셨다. 다시 길을 떠날 때, 바라봐야 할 것은 ‘그 길’(The Way)이다. 그 길을 걷는데 방해가 되는 것들을 모두 내려놓을 때, 비본질적인 것에 비수를 꽂을 때 비로소 본질을 향한 여정은 시작되는 것이리라.
이태형 i미션라이프부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