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인 신작 시집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 소외된 사람들 향한 따뜻한 시선

입력 2010-06-18 17:37


“먼지를 닦는 청소부의 중얼거림은 두 짝/앞으로 걸어간 걸음은 책상 위에 펼쳐진 의료용 기구를 정리하며 말없이 아프다/뒤쪽으로 돌아간 걸음은 환자들이 떨어뜨린 먼지를 조용히 줍는다/조용히 닳아 없어진 삶의 유혹 때문에 청소부는 매월 삼십만원을 받으며/책상 위에서 시들어가는 장미의 불안을 본다”(‘실내화’ 일부)

소외된 이들의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응시해 온 이기인(43) 시인이 5년 만에 신작 시집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창비)로 돌아왔다. 첫 시집 ‘알쏠달쏭 소녀백과사전’(2005)에서 착취와 폭력이 일상화된 공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녀들의 삶을 노래했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도 병원 청소부, 공사장 인부, 공장 노동자 등 현실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따스한 시선을 보낸다.

“파도를 넘어온 몸이 돌처럼 앉아 있다/그 까만 몸이 초록색 때수건을 손바닥에 끼고 가슴을 문지른다/(중략) 쬐그만 동네 목욕탕에서 바가지처럼 둥둥 떠 있는 슬픔이 졸졸졸/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도시의 하수구로 흘러간다”(‘때수건’ 일부)

시인은 이국만리에서 고된 노동과 차별을 견디며 외로운 삶을 꾸려가는 외국인 노동자의 슬픔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뿌리 뽑혀 시들어가는 노숙자들의 삶을 묘사한 시편도 눈에 띈다.

“노숙자의 잠 밑으로 조용한 물소리가 와서 그의 봄을 건드려 보고 간다/내다버린 몸이 오랫동안 웅크린 돌멩이처럼 굴러다니며 한뎃잠을 부린다/사랑 끝에 찾아온 그러나 곧 시들어버릴 꽃이 여기저기서 피어난다”(‘노숙자’ 일부)

시인의 시선은 ‘아래’를 향하지만 그들의 슬픔과 고단함 속에서도 한 가닥 희망과 삶의 의지를 길어올린다. “스러진 자의 잠이 바닥에서 그를 부둥켜안고 있다/(중략) 그 바닥에 귀를 기울이면 그 바닥에서 일어나 더 깊은 바닥을 부르는/어떤 낮은 바닥의 웅성거림이 들려온다/(중략) 거기서 아직 살아 있다고 하는 이의 기침이/오늘 아침에도 검은 바닥에서 그의 가족을 데리고 환하게 일어난다”(‘바닥에 피어 있는 바닥’ 일부)

“콜록콜록 돌 깎는 사람이 오래된 기침을 하면서 한 반의 아이들에게 오래된 천식을 가르친다/(중략) 아픈 몸을 끌고 가면서도 가끔은 되볼아보는 눈빛을 가르친다”(‘돌 깎는 사람’ 일부)

문학평론가 송종원은 이기인에 대해 “소외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자리에 몸을 두고 그들의 삶에 깃든 슬픔의 넝쿨들을 시로 적는다”며 “그들이 삶의 바닥으로부터 뽑아 올리는 한 줄기 빛과 희망에 대해서도 적는다”고 평가했다.

라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