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남편이 냉장고에 들어갔어요’… 아내 업신여기는 남편 상대 유쾌한 꾸짖음
입력 2010-06-18 18:12
“어이 거기. 여기 접시 한 개 남았어.” 방에서 남자가 소리치듯 말한다. “누가 좀 들고 가져다 줄 순 없어?” 여자가 부탁하듯 말하자 접시가 날아들어 깨진다. “재떨이도 줘?” 남자가 퉁명스럽게 말한다. 그리고 “우리 이제 골프 시작할거니까. 거기 박혀들 있어. 나오지 말아”라며 문을 닫아버린다.
대학 동창인 남편들의 모임이 있는 날이면 늘 벌어지는 풍경이다. 데브라(조경숙 분), 니키(서갑숙), 몰리(이연희) 세 여인은 대학 동창인 남편들 때문에 서로 알게 된 사이다. 동창 모임을 하면 남자들은 아내들이 차려주는 밥을 먹고 자기들끼리 처박혀 논다. 아내가 필요할 때는 허기가 질 때나 뭔가 심부름 시킬 일이 있을 때 뿐이다.
이 정도는 애교다. 데이브의 남편은 바람기를 주체하다 못해 니키에게 추파를 던진다. 다른 여자와 불륜관계를 맺고 있기도 하다. 니키의 남편은 회사에서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사법처리를 받을 위기에 처해 있다. 몰리의 남편은 겉으로는 아주 자상해 보이지만 사랑받고 싶은 몰리의 욕구를 철저하게 외면해 그를 외롭게 한다.
뭐 하나 맘에 드는 구석이 없는 남편들이 니키 집 지하에 있는 냉장창고에 갇힌다. 아내들의 고민이 시작된다. “이 사람들 꺼내 주지 말까?” 이제 아내들은 남편의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위치가 됐다. 그들은 남편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한 토론을 시작한다. 토론을 거듭 할수록 각자 가진 상처가 드러나고 이야기는 점점 소용돌이 친다.
연극 ‘남편이 냉장고에 들어갔어요’는 억눌린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세 여자가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는다. 남편이 냉동창고에 갇혀 죽어 간다는 엽기적인 설정이지만 이를 블랙 코미디의 형태로 포장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철저하게 여성의 관점에서 여성의 아픔을 대변하기 위해 쓰인 희곡이기 때문에 주부관객이 보기에 통쾌한 요소가 많다.
무대는 어느 집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주방이다. 주부에게 익숙한 공간을 무대로 설정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의 공감대가 잘 형성되도록 한다. 남편들은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다. 목소리만 방문 너머로 들릴 뿐이다.
‘남편이 냉장고에 들어갔어요’는 199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후 지금까지 미국 전역에서 오픈 런으로 공연되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은 작품이다. 27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내 극장 용에서 공연된다(1544-5955).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