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16강] 허 감독 24년 만의 복수 무산 “마라도나, 내가 또 졌다”
입력 2010-06-18 00:34
24년 만의 복수는 이뤄지지 못했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선수로 만났던 허정무-마라도나 두 사람이 24년 만에 다시 지도자로 조우한 월드컵 맞대결에서 허 감독이 다시 무릎을 꿇었다.
허 감독은 17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주경기장에서 벌어진 아르헨티나와의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1대4로 대패한 뒤 고개를 숙였다.
객관적 전력에서 아르헨티나가 한국보다 앞서기 때문에 경기 자체만 놓고 보면 허 감독의 이날 패배는 어느 정도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허 감독이 그동안 아르헨티나 언론으로부터 ‘과거 월드컵에서 공이 아니라 사람(마라도나)을 찼던 사람’이란 비아냥에 가까운 소리를 들었던 터라 깨끗한 복수에 실패한 아쉬움도 남았다.
한국-아르헨티나전이 벌어지기 전 아르헨티나 언론들은 멕시코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당시 허정무 선수가 마라도나를 걷어차는, 이른바 ‘태권축구’ 사진을 다시 끄집어냈다.
허 감독과 마라도나 감독은 다시 만나기까지 적지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허 감독은 멕시코월드컵 뒤 은퇴해 한국 축구 지도자 최고 영예인 월드컵 대표팀 감독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1990 이탈리아월드컵에 대표팀 트레이너로 참가한 허 감독은 1994 미국월드컵 때는 대표팀 코치로 선수들과 함께했다.
허 감독은 남아공월드컵 감독이 될 때까지 대표팀에서만 선수-트레이너-코치-감독으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왔다. 허 감독처럼 다양한 대표팀 경력을 가진 국내 지도자는 거의 없다.
마라도나 감독은 멕시코월드컵 뒤에도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선수 생활을 계속했다. 1994년 아르헨티나 프로팀 감독을 맡았다가 이듬해 다시 선수(보카 주니어스)로 복귀했고, 1997년 완전 은퇴했다.
마라도나 감독은 코치 등 대표팀 지도자 경력은 전무했으나 아르헨티나가 남아공월드컵 남미 예선 초반 부진한 성적을 내자 전격적으로 사령탑에 올랐다. ‘마라도나가 못 하면 어느 누구도 해낼 수 없다’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대표팀을 맡은 마라도나는 결국 이번에 아르헨티나를 본선으로 이끌었다.
허정무-마라도나 두 사람이 대표팀 감독으로 다시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마라도나 감독의 앞날을 예측하기가 워낙 힘든 점도 있지만 허 감독이 계속 대표팀 감독으로 남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한국 축구팬 기억 속에 허정무-마라도나 대결은 ‘허정무 완패’로 남게 됐다.
요하네스버그=이용훈 기자 co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