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나라에 붉은 물결…5000만 어시스트는 계속된다
입력 2010-06-18 00:45
남아공월드컵 한국과 아르헨티나 경기가 열린 17일 전국 곳곳에서 응원전이 펼쳐졌다. 비록 많은 골 차이로 패하긴 했지만 서울에서 제주까지 주요 거리와 가정, 공장, 회사, 군 생활관, 해경 함정, 교도소 등에서 어김없이 ‘대~한민국’ 함성이 터져 나왔다.
경찰은 전국 352곳에서 150여만명이 거리 응원에 동참한 것으로 추산했다. 서울에서는 50만여명이 시내 곳곳을 붉은색으로 물들였다. 대표적 거리 응원 장소인 시청 앞 서울광장과 세종로 일대에는 10만여명, 새로운 응원 명소로 떠오른 삼성동 코엑스 앞 영동대로에는 12만여명이 모여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6만명, 한강공원 반포지구에는 5만명이 운집한 것으로 집계됐다.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 7만명, 인천문학경기장에 5만명, 대전과 광주월드컵경기장에 3만여명이 모여 응원전을 펼쳤다.
시민들은 경기 내용에 따라 울고 웃었다. 전반 17분 박주영의 자책골이 나오자 서울광장에 모인 응원단 사이에서는 ‘아이고’하는 탄식이 쏟아졌다. 그러나 전반 종료 직전 이청용이 한 골을 만회하자 시민들은 제자리에서 뛰어오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용산역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한 민용기(32)씨는 “아직 나이지리아와의 경기가 남아 있다”며 “선수들이 낙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격려했다.
후반에 아르헨티나가 오프사이드 논란 속에 한 골을 더 넣자 야유가 쏟아지기도 했다. 일부 시민들은 경기 막판 1대 4로 점수차가 크게 벌어지자 허탈한 표정으로 일찌감치 자리를 떠났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경기를 지켜본 정성윤(64)씨는 “입원한 뒤 소리 한번 크게 지른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날 응원전은 주말의 그리스전과 달리 퇴근 후 거리 응원에 합세한 넥타이 부대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독도에서는 독도경비대원 30명과 등대원, 계단 공사를 위해 섬에 들어온 인부 등 40여명이 경비대 2층 체육실에 마련된 대형 빔프로젝터 앞에 모여 태극전사들을 응원했다. 경비대원들은 전원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외쳤다. 독도경비대장 강봉구 경위는 “비록 오늘 경기는 아쉬웠지만 남은 경기에서 태극전사들이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토 최남단 제주 마라도에서도 주민 30여명이 마라치안센터에 모여 낚시 관광객들과 함께 대표팀을 응원했다. 인천에서는 연안부두에 정박 중인 3000t급 해경 경비함정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해경 직원들의 응원전을 도왔다.
트위터로 약속 장소를 찾거나 서로 경기 내용 분석을 주고받는 최첨단 축구팬도 많았다. 이들은 즉석에서 트위터로 메시지를 띄워 응원 장소 상황과 경기 내용을 담은 재치 있는 단문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응원에 온 몸을 던졌다.
많은 외국인들이 동참하는 것도 이번 월드컵 거리 응원의 신풍속도로 자리 잡았다. 아예 휴가를 내고 찾아온 사람도 적지 않았다. 캐나다인 윌터 크리스(36)씨는 “TV에서만 봤던 거리 응원에 직접 나오니 꿈만 같다.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어 매우 즐거웠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서울광장을 찾은 장필상(45·자영업)씨도 “나이지리아전 때는 그리스전 때 같은 표범같이 용맹한 모습을 다시 보여줬으면 좋겠다. 태극전사 파이팅”이라고 외쳤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