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G20 합의 실패해도 2011년초 독자시행 가닥… 은행세, 기준·요율 결정만 남았다

입력 2010-06-17 21:14


은행세(Bank Levy: 은행부과금) 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간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정부가 최근 도입을 기정사실화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에 따라 시행시기를 비롯, 기준과 요율 등 세부 사안에 대한 정리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오는 11월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합의를 이뤄내지 못해도 우리 정부는 내년 초쯤 우리 실정에 맞는 은행세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국제 합의 없어도 ‘도입’=은행세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대형은행에게서 세금을 걷어 당시 투입된 공적자금을 회수하자는 취지로 올해 1월 중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처음 제안했다.

정부는 지난 13일 발표한 ‘자본 유출입 변동 완화방안’에 은행세와 관련된 사항을 포함시켰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 4개 부처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은행세 도입의 기준, 요율, 적립금의 활용방안 등 종합적인 검토에 들어갔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정부가 은행세를 도입키로 한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처음 밝힌 것이다. 직접적으로 ‘확정’이란 표현을 쓰지 않은 데는 G20 의장국이라는 부담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의 은행세 도입 천명 이후 G20 회의에서 번번이 합의는 실패로 끝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는 오는 11월 G20 서울 정상회의 때까지 합의안이 도출되지 않아도 한국식 은행세를 도입한다는 입장이다. 재정부 고위관계자는 17일 “G20 합의는 캐나다, 호주의 반대가 완강해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완벽한 합의는 아니더라도 국가별 의견을 반영한 일반 원칙에 의거한 합의문은 나올 것으로 보이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은행세 도입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혹시 국제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데 우리만 도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지만, 결국 느슨한 형태나마 ‘합의문’은 나올 것”이라며 “은행세는 도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언제, 어떻게 시행되나=구체적 방안 발표는 내년 초가 될 것이란 전망이 가장 유력하다. 정부는 우선 11월 G20 서울 정상회의 때까지 회원국들의 합의를 도출하는 데 최대한 노력할 계획이다.

대형은행들에게 부과금을 어떻게 매길지는 여러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일차적으로 부과금 대상은 비예금성 부채로 국한될 가능성이 높다. 비예금성 부채란 장단기 차입금, 은행채·CD 등 예금이 아닌 형식으로 조달한 부채를 말한다. 또한 부과금 요율은 국내 채권금리와 통화스와프 금리 간 차이가 기준이 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부과 대상과 기준 등은 다른 나라의 사례 등을 감안해 신중히 결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정부 방침에 대한 반대도 적지 않다. 한국의 경우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금융기관의 피해가 없었고, 공적자금 투입액도 미미한데 부과금을 도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 그리고 부과금 도입 시 부담이 고스란히 대출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반면 예금에 기반한 영업 대신 주로 본점으로부터 차입한 달러 등 비예금성 부채를 통해 영업을 해온 외국계 은행의 단기 외화 차입 유인을 줄이고, 금융기관의 과도한 위험 추구행위를 제어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민간 연구소 한 관계자는 “만약 은행세가 도입된다면 과거 금융위기 때마다 한국의 환율 변동성을 키운 단기외채 급증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 은행의 외화차입 여건을 안정시키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