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16강] 태극전사들, 어느팀과 붙어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입력 2010-06-17 18:13


2010 남아공월드컵은 세계 축구 팬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복병에서 강호로 바꿔놓은 대회로 기억될 것 같다. 태극전사들의 눈부신 활약은 유럽, 남미, 아프리카 어느 팀과 붙어도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자신감을 갖기에 충분하다. 이번 대표팀은 4강 신화를 이뤄냈던 2002년 한·일월드컵과 원정 월드컵 첫 승을 따낸 2006년 독일월드컵 대표팀을 넘어서 역대 최강으로 평가된다.

◇체력과 기술을 겸비한 강호로 발돋움=허정무호는 이미 ‘한국인 감독 첫 월드컵 승리’라는 1차 목표를 달성했다. 2002년 히딩크 체제에서 체력 담당 트레이너를 맡았던 레이몬드 베르하이옌을 2006년에 이어 코치로 기용하며 히딩크의 유산을 계승 발전시킨 결과다. 여기에 빅리그를 경험한 해외파 선수들의 경험과 기술이 포백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팀 전술에 녹아들며 명실상부한 강팀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2002년 대회 이전까지 한국 축구의 문제점은 ‘기술’로 인식됐다. 하지만 ‘히딩크 쇼크’는 한국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꿔 놓았다. 히딩크는 기술이 아닌 체력을 한국 축구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파워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히딩크의 살인적인 체력 강화 프로그램을 소화한 한국은 3-4-3 전술을 기반으로 강력한 압박 축구를 펼치며 유럽의 강호들을 물리치고 4강에 점프했다.

하지만 16강 연장 끝에 한국에 패한 이탈리아 등 ‘축구 강국’들은 “한국이 홈 어드밴티지 덕분에 승승장구했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2006년 대표팀은 딕 아드보카트 체제로 전환했지만 1승1무1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스리백과 포백 시스템을 놓고 본선 시작까지 저울질을 벌인 끝에 아드보카트의 선택은 둘을 혼용하는 ‘하이브리드’ 전략이었다.

◇일본파→유럽파 세계축구 중심부로 접근=이번 대표팀은 23명 엔트리 가운데 6명(박지성, 이청용, 박주영, 기성용, 김남일, 차두리)이 유럽 무대에 적을 두고 있다. 여기에 잉글랜드 경험이 있는 이영표(알 힐랄), 이동국(전북)과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일본을 경험한 안정환(다롄), 러시아 무대에서 뛰었던 오범석, 김동진(이상 울산)을 더하면 유럽 경험을 가진 선수들은 모두 11명으로 늘어난다. 일본 J리그 소속인 이정수(가시마), 김보경(오이타)과 나고야에서 뛴 경험이 있는 김정우(상무)까지 합치면 해외 무대를 맛본 선수들이 14명으로 23인 엔트리의 절반을 훌쩍 넘는다.

유럽파 ‘양박 쌍용’이 중심이 된 한국 선수들은 평가전과 본선 무대를 거치며 세계 유수의 상대와 겨뤄도 밀리지 않는 기량을 보이며 한국 축구의 위상을 드높였다. 2002년 대표팀이 황선홍, 유상철, 홍명보 등 J리그 경험자를 주축으로 구성됐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한국 축구는 2002년 4강 신화를 바탕으로 유럽 무대의 주목을 받았고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는 등 빅리그를 접하며 선진 기술을 축적해 나갔다. 박주영(AS모나코), 이청용(볼턴), 기성용(셀틱) 등이 20대 초반에 빅리그의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갖춘 점은 한국 축구의 미래가 더 밝으리라는 기대를 걸게 만드는 대목이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