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개헌 그리고 세종시

입력 2010-06-17 18:19


“개헌은 더 이상 미룰 사안이 아니다.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내년이 적기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지난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개헌 공론화를 제의했다. 현행 헌법은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지만 시대변화와 국민적 요구를 담아내는 데 명백한 한계를 드러낸 만큼 6월 국회에서 개헌특위를 구성해 본격적인 개헌논의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며칠 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언론인터뷰에서 “개헌 논의 자체를 거부할 생각은 없다”며 “한나라당이 진정성 있게 안을 갖고 나오면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개헌은 정치권의 오래된 화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7년 1월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 일치를 주요 골자로 한 원 포인트 개헌을 제의했다 체면만 구겼다. 대선이 있는 해에 정치권과 사전협의 없이 개헌안 시안을 발표해 역풍을 자초했다. 노 대통령은 여야가 18대 국회에서 개헌을 논의한다는 조건으로 개헌안 발의를 포기했지만 그 필요성은 지금도 유효하다.

대통령 5년 단임제의 현행 헌법은 3김시대의 산물이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김을 돌아가며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정치적 흥정의 결과물이 지금의 헌법이다. 현행 헌법이 만들어진 1987년 당시 대통령 4년 중임제 여론이 우세했으나 그러면 임기가 너무 길어(중임하면 임기 8년) 3김 중 대권을 못 잡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암묵적 합의로 대통령제 국가에선 예를 찾아보기 힘든 5년 단임제가 도입됐다는 야사(野史)도 전해진다.

3김시대의 낡은 옷을 벗어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입을 때가 됐다. 현행 헌법으론 대통령과 국회 임기 불일치에 따른 국정 운영의 구조적 불안 요인을 막을 수 없다.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이 다른 경우가 자주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꼭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으나 아무래도 효율적인 국정 운영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 정당이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을 동시에 장악하더라도 이번 6·2선거에서 국민들이 보여줬듯 지방선거를 통해 권력 집중을 견제할 수 있다. 대통령과 국회 임기를 일치시키면 대선과 총선을 통합 실시할 수 있어 막대한 선거비용도 줄일 수 있다.

대통령 4년 중임제가 됐든, 이원집정부제가 됐든, 내각책임제가 됐든 이제 개헌은 더 이상 피하거나 외면할 일이 아니다. 그 시기는 전국 단위 선거가 없는 내년이 적기다. 그러려면 지금부터 논의를 시작해도 시간이 빠듯하다. 이 기회를 놓치면 또 몇 년을 기다려야 한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오래 전부터 통일시대를 대비하고, 국민 기본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헌 논의를 진행해 왔다. 정치권도 개헌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문제점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 것, 국회의 직무유기다.

개헌을 논의할 때 짚고 넘어가야 할 국가 현안이 있다. 세종시 문제다. 지방선거에서의 충청권 참패로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은 동력을 잃었다.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세종시 수정법안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원안대로 행정부처 일부를 세종시로 이전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면 이 원안은 원안이 아니다.

원래 안은 청와대와 모든 중앙부처를 세종시로 옮기는 행정수도 이전이었다. 그런데 행정수도 이전은 천도(遷都)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는 ‘대한민국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에 위반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기형아로 태어난 게 지금의 원안이다. 민의가 세종시 수정으로 모아졌다면 깔끔하게 갈무리됐을 텐데 반대로 나와 행정부처 분할로 인한 국정의 비효율성이 여전히 논란거리로 남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4일 대국민연설에서 “국정의 효율을 생각하든, 국가경쟁력을 생각하든, 통일 후 미래를 생각하든 행정부처를 분할하는 것은 두고두고 후회할 일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절대 해선 안 될 일이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다. 그렇다면 행정기능을 한 곳에 모으는 것 외에 다른 수가 없다. 기왕 얘기가 나왔으니 지금처럼 모든 행정기능을 서울에 두든지, 아니면 세종시를 제7공화국 수도로 하는 방안을 개헌 논의 때 공론에 부쳤으면 한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