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서기관’은 좋고 ‘서기’는 싫다?
입력 2010-06-17 18:13
“언론에서 ‘하위직 공무원’이라고 할 때마다 기분이 안 좋죠. 제 인격마저 낮게 평가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주위 사람들이 ‘면서기’라고 부를 때면 왠지 듣기 거북하더라고요. 시대에 뒤떨어지고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최근 정부가 공무원 호칭제도를 바꾸면서 내건 명분이다. 달라진 호칭은 6∼9급 공무원을 모두 ‘주무관’으로 부르기로 했다는 게 핵심이다. 6급 주사, 7급 주사보, 8급 서기, 9급 서기보라는 이름을 아예 없앤 것이다. 이들을 통칭하던 ‘하위직 공무원’도 ‘실무직 공무원’으로 함께 바뀌었다. 각종 문서나 명함에는 ‘계약직’ ‘기능직’ 등 신분중심의 명칭 대신 업무중심의 대외직명으로 표기할 수 있다. 이를테면 ‘행안부 행정서기 홍길동’을 ‘행안부 국세조사관 홍길동’으로 쓰는 것이다.
공무원의 명칭은 계급과 직위에 따라 두 가지로 불린다. 계급명칭은 9급부터 고위공무원까지 8등급으로 나뉜다. 5급 사무관, 4급 서기관, 3급 부이사관은 그대로지만 예전의 2급 이사관과 1급 관리관은 2005년부터 고위공무원으로 한 묶음이 됐다. 직위명칭은 정부 부처 본부의 경우 실·국(관)·과·계장을, 소속기관은 국·과·계장을 둔다. 직위가 없을 때에는 보통 계급으로 부른다.
이 같은 명칭 가운데 낙후된 느낌을 주는 이름이 없지 않다. 주사, 서기 등의 이름은 일제시대의 유산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고, 직능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한 측면이 있다. 공무원 스스로조차 불리기 싫은 이름을 바꾼 것은 잘한 일이다. 명칭을 변경하면서 국립국어원이나 민간브랜드 전문가의 의견까지 구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왕 호칭을 바꿀 바엔 좀 더 개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용어를 검토할 만한데도 ‘관(官)’자 하나를 넣은 것으로 쉽게 마무리했다. 서기관, 사무관 등 기존 고위직과 동렬에 서기 위한 하위직들의 열망을 이해하면서도 명칭 인플레의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행안부 장관은 “공직사회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어 소통을 원활히 하려는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이름 속에 공복(公僕) 아닌 관존(官尊)의 사고가 들어있지 않은지 돌아 볼 일이다.
요즘 공무원들이 싫다는 ‘서기’가 예전에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지금도 북한에서 서기는 최고위직이다. 공무원의 상상력이 기껏 자신들의 명함에 머문다거나, 남들이 ‘○○관님’으로 불러주는 데 희희낙락해서야 이름을 바꾼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