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16강] 강호들 “반갑다, 한국” → “피하자, 한국”
입력 2010-06-17 18:31
과거 대한민국은 월드컵 무대에서 만만한 동네북이었다. 상대팀에게 한국은 반드시 꺾어 승점을 추가해야 할 최약체, 비기기만 해도 망신인 존재였다.
하지만 반세기에 걸친 월드컵 무대 도전과 숱한 좌절 끝에 대한민국은 세계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했다. 과거엔 축구 열강들이 한국과 같은 조에 속하길 바랐다면 이젠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 상대다. 우리 대표팀은 2002년 4강 신화가 우연이 아님을 천하에 증명, 명실상부 세계 축구 중심에 바짝 다가섰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선배들의 피나는 노력과 경험이 축적된 덕분이다. 사상 첫 본선 무대였던 1954년 스위스월드컵. 전쟁에서 막 벗어난 가난한 나라의 대표팀은 등번호도 없는 유니폼을 입고 시합 직전 취리히에 도착했지만 첫 경기 헝가리 전에서 0대 9의 참패를 기록하고 만다. 2차전 터키 전에서도 0대 7 패배. 1차전 1만7000명이던 관중은 2차전 2000명으로 크게 줄었다. 누구도 보고 싶지 않은 경기였던 셈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3차전 상대인 서독의 본선 토너먼트 진출과 한국의 탈락이 확정됐다는 이유로 3차전을 아예 취소했다.
32년 만에 다시 찾은 월드컵 본선 무대는 1986년 멕시코월드컵. 오랜만에 나온 탓에 몸이 굳어서였을까, 첫 경기 아르헨티나 전에서 18분 만에 두 골을 내줬다. 하지만 후반 들어 분위기가 살아났고 후반 28분엔 박창선의 월드컵 첫 골이 터진다. 비록 1대 3으로 졌지만 의미 있는 승부였다. 대표팀은 고조된 분위기를 바탕으로 불가리아와의 2차전에선 1대 1로 무승부를 기록, 역사적인 월드컵 첫 승점을 따냈다. 이탈리아와의 3차전은 아쉬웠다. 최순호와 허정무가 한 골씩 넣었지만 2대 3으로 안타깝게 무릎을 꿇었다. 결과는 1무2패로 초라했지만 매 경기 골을 넣었고 첫 승점도 벌었다. 상대가 우승 후보 이탈리아, 아르헨티나였음을 감안하면 충분히 희망적인 결과였다.
이후 한국은 아시아 맹주로 등극, 월드컵 본선 무대쯤은 빠지지 않고 진출할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세계 무대 벽은 여전히 높았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선 힘 한번 제대로 못 써보고 3패로 허무하게 물러났다. 1994년 미국월드컵에선 서정원과 홍명보 등의 활약으로 강호 스페인, 독일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지만 결과는 2무1패로 탈락하고 말았다.
1998년은 잊고 싶은 기억이 가득한 월드컵이다. 1차전 멕시코와의 대결에서 하석주가 전반 27분에 월드컵 사상 첫 선제골을 넣었지만 1분 후 의미 없는 태클로 퇴장당하는 바람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멕시코로 기울었다. 결국 1대 3 패배.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오렌지 군단에 0대 5로 크게 졌고 당시 차범근 감독은 현지에서 물러나는 수모를 당했다.
2002년 홈에서 4강 신화를 기록한 한국은 2006년 독일월드컵 초반까지 순조롭게 풀어갔다. 토고와의 1차전에서 2대 1로 이기며 사상 첫 원정승을 기록했고 세계 최강 프랑스와도 1대 1로 비기며 2002년 4강의 저력을 입증했다. 하지만 한국은 마지막 경기에서 스위스에 0대 2로 패하며 원정 16강 진출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원정승 등을 통해 한국 축구가 더 이상 변방이 아님을 증명했고 2010년 그리스전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월드컵이었다.
김도훈 기자 kinch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