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렇게 사는 게 이상한가요?”… 2년차 ‘초보 농부’ 주하늬·양윤정 부부
입력 2010-06-17 17:51
그를 만나기로 한 건 인터넷에서 발견한 이 사진(위에서 두 번째) 때문이다. 땀 젖은 머리카락은 이마에 달라붙고 바지는 흙투성인데 뭐가 좋은지 밭두렁 할머니 곁에서 ‘V’를 그리며 웃는다. 대한민국 20대 중에 요즘 저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 몇이나 될까.
그의 블로그를 들춰보니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농사를 짓고 있다. 열 살 때부터 학교에 적어낸 장래희망이 늘 ‘농부’였다고 한다(사춘기 중학생 때는 좀 ‘있어’ 보이려고 ‘농학박사’라고 했다). 대학에서 만나 8년 작업(?) 끝에 지난달 두 살 연상인 아내(아래 사진)와 결혼에 골인했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도시 처녀는 한 달 만에 밭 매는 아낙네가 됐다.
농사 2년차 ‘초보 농부’ 주하늬(27)씨와 농촌에 뛰어든 ‘겁 없는 새댁’ 양윤정(29)씨. 지난 15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 문당리 신혼집에 찾아가니 50년 묵은 기와집이다. 여간해선 짖을 줄 모르는 삽살개 희망이가 500년쯤 됐다는 높다란 향나무 그늘에서 마당을 지키고 있다.
후텁지근한 바깥 공기는 기와집 황토벽을 넘지 못했다. 집안에 들어서자 서늘한 기운에 살갗이 보송해졌다. 이 정도면 에어컨은 필요 없겠는데…. 냉장고가 15년은 족히 돼 보인다. 대우전자가 탱크주의로 만든 것이다. 투박한 15인치 브라운관 TV가 눈에 들어왔을 때 잠시 흑백이 아닐까 생각했다.
-집이 좋네요.
“제가 여기서 태어났어요. 증조할아버지부터 살던 집인데 저희가 결혼하니까 부모님이 분가하셨어요. 하하. 냉장고 텔레비전 다 주고 가셨죠. 혼수요? 그릇 냄비 같은 부엌살림이랑 이불 샀어요.”
-부모님은 어디 사세요?
“한울마을이라고, 걸어서 5분 거리에 아버지가 밥상공동체를 만드셨어요. 귀농, 귀촌한 20가구 전원마을인데 거기 사세요.”(밥상공동체는 거창한 목표 대신 밥이나 같이 먹으며 식구처럼 살자는 공동체 운동이다)
-신혼여행은요?
“아직 못 갔어요. 5월 1일 결혼식 하고 일본에 가려다가 모내기 때문에 미뤘어요. 8월쯤 가려고요. 벼농사는 그때가 덜 바빠요.”
논 1만평, 밭 1000평, 소 40마리. 아버지(주형로·52)가 하던 농사를 지난해 2월부터 하늬씨가 맡았다. 벼는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 오전 6시 눈을 뜨면 하늬씨는 눈곱 낀 채로 나가서 논물부터 살핀다. 지난 9일 모내기를 마친 요즘은 물 깊이가 10㎝는 돼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게 물이다. 이 마을은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쓰지 않는다. 벼 사이로 풀이 올라오지 못하게 막는 1차 조치가 보통 논보다 물을 많이 채우는 것이다. 부족한 물을 양수기로 보충하고 벼에 벌레는 없는지 살핀 다음엔 밤새 논둑 철망 안에 가둬둔 오리 100여 마리를 논에 풀어놓는다.
오리는 벼에 붙은 해충을 잡아먹으며 논물 위를 헤엄쳐 다닌다. 물갈퀴에 흙탕물이 일면 햇볕이 논바닥에 닿지 못해 풀 자라는 걸 막을 수 있다. 우루과이라운드(제8차 다자간 무역협상) 타결에 쌀 시장 개방이 현실로 닥친 1994년 주민들을 설득해 국내 처음 이 유기농 오리농법을 보급한 이가 하늬씨 아버지다(2008년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요청으로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오리농법을 전수하기도 했다).
오리가 잘 노는지 한참 지켜본 뒤엔 축사로 간다. 이곳도 친환경이다. 하늬씨 소들은 항생제나 성장촉진제를 먹지 않는다. 풀과 곡류로 만든 TMR 사료를 고루 나눠주고 집에 돌아오면 오전 8시. 윤정씨가 아침상을 차려놓고 있다. 이날 메뉴는 현미밥에 된장국, 나물 몇 가지와 김치였다.
-결혼하고 하늬씨가 무슨 일부터 시키던가요?
“삽질이요. 하하하. 작은할머니 밭에 이랑과 두둑 높이는 거 도와드렸어요.”
-농부 아내, 할만 한가요?
“대구를 떠나본 적이 없다가 여기 온 지 한 달 반인데, 요 몇 년간 가장 편했던 시간이에요. 몸은 고돼도 여유가 생기네요. 남편과 같이 일하는 것도 좋고. 제가 장화 신고 논에 들어가면 동네 분들이 지나다 말고 구경하세요. 계속 예쁘다, 착하다 하시면서.”
-농촌에 시집오는 게 망설여지지 않던가요?
“경북대 풍물동아리에서 만났는데 워낙 연애를 오래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요. 저희 부모님도 하늬 착하다고 반대하지 않으셨고요. 하늬는 어른들을 잘 챙겨요. 제가 오지랖 넓다고 할 만큼. 고모만 여덟 분인데 대부분 근처에 사시거든요.”
윤정씨 기상시간은 오전 7시다. 아침 준비를 하고 시간이 남으면 텃밭에서 풀을 뽑는다. 8시에 하늬씨가 들어오면 같이 밥을 먹고, 급한 일이 없으면 오전엔 하늬씨 혼자 논에 나간다. 이날은 오리가 논에서 나가지 못하게 그물망을 보수하고, 뜬모(너무 얇게 심어 모가 착근이 안 된 것)를 찾아 다시 심었다.
오후는 부부가 함께 일하는 시간이다. 챙이 넓은 모자를 나란히 쓰고 나선다. 디자인이 같은 ‘커플룩’이다. 하늬씨 아버지는 “며느리가 시집온 지 한 달도 안 돼 장화 신고 논에서 돌아다니니까 마을사람들한테 지청구(꾸지람)도 많이 먹었다. 새댁 얼굴 타게 뭐하는 거냐고들 한다”며 웃었다. 지난주 모내기 때는 윤정씨가 참을 만들어 냈다.
국수를 끓이고 파전을 부치고 수육도 삶았다.
“한 집에 살아야 가족이냐? 같이 밥 먹으면 가족이지.” 밥상공동체를 추구하는 시아버지 얘기다. “내가 시할머니까지 모셨는데 그분들도 며느리 때문에 오죽 불편했겠냐.” 이건 시어머니(49)가 윤정씨한테 한 말이다. 그래서 이 가족은 5분 거리에 따로 살면서 수시로 밥 먹으러 건너다닌다.
하늬씨의 하루 일이 끝나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빠르면 저녁 8시, 늦으면 자정이다. 마지막 작업은 아침 일의 역순이다. 소 밥 주고, 오리를 다시 논둑 철망에 몰아넣고(하늬씨가 ‘꽉꽉’ 소리치면 밥 주나보다 해서 오리들이 모여든다), 벼에 벌레는 없나 살피고, 논물을 조절한다.
-왜 그렇게 농부가 되고 싶었던 거죠?
“이름이 ‘하늬’잖아요. 곡식 여물게 해준다는 하늬바람에서 따온 거래요. 어려서부터 농사짓는 아버지가 유기농으로 마을을 바꾸는 게 멋있었어요. 아버지가 열 살 생일선물로 모종삽을 주셨는데, 그거 들고 논밭 따라다니다가 자연스레 고등학교는 농업 대안학교(홍성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에 갔고, 대학 전공도 원예학과예요. 그런데 제가 좀 이상한 건가 봐요. 초등학교 동창 70명, 중학교 동창 100명 중에 농사짓는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지난해 처음 자기 농사를 지었는데 잘됐나요?
“아직 배우는 중이라서, 하하. 쌀이 200가마 정도 나왔어요. 매출은 3500만원인데 비용 제하면 순수익은 2000만원쯤. 수익은 소가 더 좋은데 출하 시점에 따라 연매출이 들쭉날쭉해요.”(하늬씨 아버지에게 따로 물으니 지난해 쌀 수확이 예년보다 30% 줄었다고 한다. 소도 두어 마리 병에 걸려 죽었다. 농사는 스스로 배우는 거라 지켜보고 있는데, 그래도 첫해 성적이 80점은 된다며 기특해했다)
-농부가 됐는데, 이젠 뭘 할 건가요?
“직거래 유통망을 늘리고, 제 쌀 브랜드도 만들고, 쌀 포장지 디자인도 연구하고. 지난해 수확한 쌀 중 10가마는 ‘꿈꾸는 작은 농부’란 브랜드를 붙여서 지인들에게 줬어요. 요즘은 환경과 직결된 논 생물에 관심이 많아서 그 공부도 하려고 해요. 농촌에서 할 일 없을까봐 걱정할 일은 없죠.”
이날 하늬씨 시간을 좀 많이 뺏었다. 농번기에 반나절 이상 따라다니니 짜증날 법도 한데, 그만 가줬으면 하는 눈치를 채기가 쉽지 않았다. 그냥 저 사진처럼 웃고만 있으니.
홍성=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