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화산 폭발 중심으로 지역문명사 다시 써야”
입력 2010-06-17 17:36
‘백두산 대폭발의 비밀’ 펴낸 소원주 장학관
“10세기 백두산 대폭발은 수 천 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그 폭발로 일대 인류 문명이 초토화됐을 텐데도 역사학계는 폭발이 끼친 영향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아요.”
소원주(54) 울산교육청 장학관이 발해로 대표됐던 한반도 북부와 중국 동북부 지역 문명의 붕괴와 백두산 폭발과의 관계를 파헤친 ‘백두산 대폭발의 비밀’(사이언스북스)을 펴냈다. ‘한국 고대사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서’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일본 지질학계 등의 백두산 분화 연구 성과 등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발해 멸망의 미스터리를 추적했다.
과학 교사 출신으로 일본과 캐나다에서 지질학을 공부한 소씨는 전문 화산학자는 아니지만 1990년 일본 유학 시절 북부 아오모리 지방 지층에 쌓인 백두산 화산재를 직접 목격한 것을 계기로 백두산 폭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 책은 지난 20년간 마치다 히로시 도쿄도립대 명예교수 등 저명 화산학자들과 교류하고, 한국과 일본, 백두산을 오가며 연구한 성과들을 묶은 것이다.
소씨는 16일 발해사를 비롯한 10세기 한반도 북부 지역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백두산 폭발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해는 거란의 침공으로 926년 멸망했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소씨는 그러나 백두산 분화라는 자연현상을 주요 변수로 역사를 다시 들여다 볼 필요성을 제기했다. 물론 발해 멸망 이전에 백두산 분화에 대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일부 지질학자들은 분화 연도 추정의 오차 범위가 크기 때문에 다른 증거가 발견되면 백두산 분화 연대가 926년 이전으로 앞당겨 질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백두산에서 1200㎞ 떨어진 일본 북부 아오모리 지방 지층에서 화산재가 발견될 정도로 폭발의 규모는 엄청났다고 한다. 일본 등에 쌓인 화산재의 두께로 추산해 낸 마그마의 분출량은 100㎦로, 서기 79년 이탈리아의 고대 도시 폼페이를 한순간에 사라지게 한 베수비오 화산의 50배였다는 것이다.
소씨는 “백두산 분화는 당시까지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것을 파괴해 그 지역 인간 역사를 공백으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근거로 거란이 발해 지역에 정착하지 않고 곧바로 떠났고, 발해 주민들이 고려와 중국 등으로 대거 유입된 사실 등을 들었다.
그는 “발해 멸망 후 200년간 공백기로 남아있는 역사를 백두산 폭발을 중심에 놓고 다시 써야 한다”며 “지질학계와 고고학계, 역사학계가 연구 성과들을 공유하며 협력한다면 잃어버린 역사를 올바로 재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동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