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삼킨 ‘日 위안부 할머니의 삶’ 글·그림으로 엮어… ‘꽃할머니’
입력 2010-06-17 17:30
꽃할머니/권윤덕 글·그림/사계절
일본 제국주의가 일으킨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 열세 살 소녀는 언니와 들에서 나물을 캐고 있다가 일본 군인들에게 붙잡혀 어디론가 끌려간다. 배와 차를 옮겨 타며 다른 여자들과 함께 끌려간 전쟁터에서 소녀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는다. 일본 군인들의 위협 속에서 매일 매일 군인들의 성 노리개가 돼야 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전쟁터에 버려진 채 떠돌다가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몸과 마음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과거를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한참의 세월이 흘러 정신은 돌아왔지만 그녀는 갈 곳이 없었다. 고향을 찾아갔지만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반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밤마다 일본 군인들에게 시달리고, 폭탄이 터지는 무서운 꿈에 가위눌려 잠에서 깨는 일이 되풀이됐다.
주위의 무관심 속에서 과거를 숨기고 외롭게 살던 그녀는 50년이 흘러서야 세상 사람들에게 가슴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팔순이 넘은 그녀는 현재 작은 임대 아파트에서 동생이 남긴 손자와 함께 살고 있다. 원예치료를 받으며 배운 꽃누루미(눌러서 말린 꽃과 잎으로 그림을 구성하는 일) 활동을 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꽃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였던 심달연 할머니가 실제 겪은 일을 글과 그림으로 담아낸 그림책이다. 일제 시대 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피해자는 30만명으로 추정된다. 그들 중 대다수는 전쟁터에서 성 착취를 당하다 죽어갔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악몽에 시달리며 비참한 삶을 살았다. 반인륜적 전쟁 범죄의 최대 피해자들이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아이들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운 주제일 수도 있지만 우리 역사를 직시하며 전쟁의 끔찍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그림책은 한국 중국 일본 등 3개국의 작가와 출판사들이 공동으로 기획하고 함께 만드는 ‘한·중·일 평화그림책’ 시리즈의 첫 권이다. 아이들이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드는 이 시리즈는 국가별로 작가 4명이 4권씩 모두 12권을 제작해 내년까지 3개국에서 잇따라 공동으로 출판될 예정이다.
라동철 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