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24명의 드라마같은 삶을 엿보다… ‘바람의 노래’

입력 2010-06-17 21:26


바람의 노래/송준 글·정형우 사진/동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송준이 예술가 24명을 심층 인터뷰 했다. 인터뷰에 3∼4일 소요되는 것은 기본이었으니 이 책은 정형화된 인터뷰라기보다 오랜 지인에 대해 쓴 에세이에 가깝다.

저자의 사실적인 묘사는 운치 있는 필체와 어우러지며 가독성을 높인다. 소리꾼 장사익을 만나보지 않았어도 저자가 전달하는 느낌만으로도 그를 알 수 있다. 늘 편안한 차림에 부스스하게 관리하는 수더분한 구레나룻, 구렁이 담 넘어가듯 척척 감기는 충청도 사투리, 유명세를 초연한 듯한 모습 등. 저자가 꼽는 특징만으로도 장사익의 모습이 그려진다.

저자는 대표곡 ‘찔레꽃’의 탄생 배경을 장사익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갸우뚱하면서 담장 안을 기웃거리며 살펴보는데, 저 구석에 수줍게 숨어 핀 찔레꽃 한 떨기가 있잖아유. 순간 공연히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왈칵 눈앞이 흐려지고 울음이 솟아오르는데… 정말 힘들 때였쥬. 그날 노래를 하나 맹글었슈. 그게 ‘찔레꽃’여유.”

카센터에서 일하던 장사익은 이날을 계기로 정말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보자는 결심을 했고, 카센터를 접고 태평소 연주자로 전국을 떠돌았다.

책을 읽다보면 22편의 인간극장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인터뷰 대상을 주인공으로 삼아 단편소설 쓰듯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이다.

‘담다디’ 이상은 편은 그녀를 만난 느낌에서 시작한다. 브라운관에서 보던 스타의 이미지와 달리 실제 만나본 그녀는 카메라를 낯설어 하는 수줍은 여자였다.

1988년 혜성처럼 등장해 ‘담다디’로 요즘 인기 아이돌 만큼의 관심을 받던 그녀가 갑자기 짐을 싸서 미국으로 떠난다. 뉴욕의 프랫인스티튜트에서 그림 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그녀는 당시의 결정에 대해 “가난했고, 착했고, 무모했고, 여렸고, 무지했고, 순수했다. 오로지 궁금한 것을 알아보고 체험해 보자는 것이 바람의 전부였다”고 털어놓는다.

이 책의 지은이는 한 명이 더 있다. 렌즈로 인터뷰하는 사진작가 정형우다. 책에는 인터뷰 대상의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다.

소설가 이외수 편은 그림과 글이 어우러진 인터뷰다. 이외수가 틈틈이 그려온 선묵화 여러 점이 실려 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던 이외수는 그림을 포기한 이유를 “세상에 더 이상 새로운 그림을 내놓을 수 없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그는 젊은 시절 지독한 가난을 경험했다.

“43세까지도 저는 밥값을 못하는 ‘인간 기생충’이란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내가 친정에서 김치를 훔쳐 와야 했을 정도. 그런 처지에서도 문학만은 놓고 싶지 않았어요. 문학은 내 삶의 지지대였습니다.”

하모니시스트 전제덕도 젊은 시절 열악한 환경 속에서 예술에 대한 열정을 지켰다. 태어난 지 보름 만에 시력을 잃은 그는 청년기에 세상에 대한 불만과 자신에 대한 답답함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했다. 답답증과 억울함에 화를 못 이겨 몸에 닿는 것이면 죄 때려 부수기도 했다. 막힌 마음을 뚫어준 것은 1996년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은 벨기에 출신 재즈 하모니시스트 투츠 틸레만스의 연주였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귀신같은 하모니카 소리가 들려요. 깜짝 놀랐어요. 알아보니 투츠 틸레만스였어요… 가슴이 북받쳐서 많이 울었어요. 음반을 천 번도 더 들었을 거예요. CD가 망가지면 새로 사다가 듣고, 나중에는 내 연주를 들으면서 감동해서 또 울었죠.”

이 날을 계기로 그는 하모니카에 자신의 인생을 맡겼으며, 2004년 최고 수준의 하모니시스트가 돼 한국 최초로 하모니카 연주 음반을 들고 나타난다.

저자는 따뜻한 시선으로 인터뷰이의 인생을 아름답게 묘사한다. 그들의 말투를 최대한 살린 직접 인용을 통해 독자는 인터뷰 대상과 대화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