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재-작가 김성일 장로] 왜 하필 안방을 서재로 쓰느냐고? 책 읽고 글 쓰고 잠 자고, 편하니까!

입력 2010-06-17 20:59


북한산 자락에 있는 소설가 김성일(70·이태원감리교회) 장로의 서울 돈암동 아파트 자택 안방엔 장롱이나 가구, TV 등이 없다. 자개농이 자리 잡고 있을법한 자리엔 책장이 차지하고 있다. 아리랑고개가 내려다보이는 창쪽으론 데스크톱이 놓인 책상이 있었고, 책장 앞에 있는 앉은뱅이 자개상 위엔 각종 자료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거실 벽 한쪽에도 주제별로 잘 정리된 책장이 있었다. 현관 왼편 작은 방에는 읽은 지 좀 지난 책들을 뒀다. 3곳에 있는 책을 어림짐작으로 세어보니 3000권쯤 꽂혀 있는 것 같았다.

왜 안방을 서재로 쓰고 있을까 궁금했다. “1970년 신혼 때 단칸방에 살았는데 서재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꿨죠. 당연히 가장 큰 공간이 서재죠. 안방에서 잠을 자고, 아이들을 키우고 책도 읽고 원고를 썼죠.”

김 장로는 결혼 후 여태까지 안방마님으로 대접해 주지 못한 10년 연하의 아내 이화숙 권사에게 늘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김 장로는 모태신앙이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교회와 점차 멀어지게 됐다. 감수성이 풍부한 문학도였기 때문에 성경보다 서양의 역사와 철학, 소설책에 빠져 살았다.

소설가의 길을 가려면 문리대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선택이지만 그는 고정관념을 뒤집었다. 제대로 된 작품을 쓰려면 이공계의 전문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계공학과를 선택했다. 당시 서울대엔 동인지 ‘산문시대’가 유명했다. 무진기행의 김승옥, 평론가 김현(작고), 김치수, 염무웅 등 문리대생이 터줏대감이었다. 김 장로는 그들 틈에서 유일한 이방인이었다.

21세에 데뷔해서 40세까지 순수문학 지상주의로 뜬구름을 잡는 소설을 썼다. 마흔 줄에 접어든 1980년대 초반, 8층 석탑 같던 그의 몸이 산산조각 부숴 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내가 위암에 걸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적이 있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을 할 수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마침내 무릎을 꿇었다.

그날 김 장로는 지난날의 모든 죄를 통곡하며 회개했다. “몹쓸 죄인은 전데 왜 아내에게 사망의 고통을 주시나요. 암 덩어리는 내게 주시고 천사 같은 아내를 살려주세요.”

의사가 불쑥 던진 한마디가 김 장로의 심장을 때렸다. “기3운7(의술이 3이면 운이 7이다)이라는 말이 있어요. 혹시 예수를 믿으시나요. 열심히 기도나 하세요.”

김 장로는 단 칼(메스)에 두 손 들고 항복할 줄은 몰랐었다. “제가 직접 맞았더라면 그렇게 쉽게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끝까지 대항했을 거예요.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암으로 죽어가는 것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더군요. 그날 저는 하나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애원했지요.”

예수를 믿으면서도 십자가를 향해 손가락질하던 이전의 못난이가 아니었다. 사반세기 만에 예수의 품으로 돌아온 작가는 완전히 변했다.

그의 변신은 곧바로 신문지상으로 확인됐다. 첫 작품이 ‘땅끝에서 오다(홍성사)’이다. 83년 한국일보 1년 동안 연재된 이 작품으로 마침내 국내서 처음으로 ‘기독작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김 장로는 이때부터 성경에 나오는 내용 중 평신도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소재로 소설로 썼다. 아브라함과 에녹 등에 대해 추리기법을 동원해 작품화했다.

작품을 쓸 때는 역사 자료를 가장 중요시 여긴다. 성경에 ‘성’자만 들어간 각종 문헌을 모조리 모았다. 특히, 동양사 관련 자료는 아주 꼼꼼히 챙긴다. 아무리 찾아도 구할 수 없을 땐 기도를 한다. 한국고대사를 다룬 ‘홍수 이후(홍성사)’ 4권과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신앙계)’ 3권이 대표적이다. 장편소설 ‘땅끝에서 오다’(홍성사)는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 실종된 동료이자 직장 상사인 친구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현장을 그린 작품이다.

‘땅끝의 시계탑(1,2)’은 1990년 쯤 국민일보에 연재한 작품이다. 88올림픽을 무대로 해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잠실운동장이 폭파되기 전에 극적으로 해결하는 작품이다.

‘땅끝의 십자가(홍성사)는 91년 발발한 걸프전의 배후가 누구인지 궁금해 할만한 내용을 다뤘다. ‘빛으로 땅끝까지’는 생명공학을 가지고 지구를 위협하는 세력을 고발한다. ‘소리로 땅끝까지’는 의사들이 치유의 방법으로 3가지를 이야기 한다. 광선치료와 소리와 눈물을 이용한 치료법이다. ‘오퍼레이션 띠므아’는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쓴 것으로 인류의 죄악이 몰려있는 곳을 파헤친다.

어려운 성경 내용을 소설로 풀어 쓴 ‘불타는 땅’(신앙계)과 역사물을 소설로 옮긴 대표적인 작품으로 ‘홍수이후’(홍성사)와 ‘동방’(홍성사)이 있다.

그의 서재에 2권의 간증집이 있다. 93년에 나온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홍성사)’는 신앙생활을 하는 데 문제가 많이 생기는 이유를 설명한다. 연재 중인 플러스 인생에 연재 중인 ‘문화전쟁의 시대’는 9월에 단행본으로 나올 예정이다.

김 장로는 독자들에게 읽어볼 만한 책으로 10권을 골라 짧은 서평을 했다. 신앙의 비밀을 알기 쉽게 풀어내는 ‘오두막’을 펼쳤다. 납치범한테 딸을 잃은 주인공이 오두막에서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을 만나는 이야기로 신도들이 꼭 읽어보기를 권했다. ‘아프리카의 역사’는 인류 죄악의 비빔밥으로 돼 있는 이곳이 얼마나 잔인하게 살아왔는가를 알려준다.

예루살렘의 변화를 다룬 ‘예루살렘’은 종교라는 것이 어떻게 변해 내려온 것인가를 알게 한다. ‘시간의 역사’는 우주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지적설계도가 존재했다는 내용이다. ‘신의 언어’는 유전자의 설계도가 원래 유전자 속에 들어있다는 내용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반박하기 위해 썼다 했다.

‘용서 없이 미래 없다’는 진정으로 예수를 믿는 신학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역설이다. ‘거대한 체스판’은 세계의 판도가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체스판에 비교했다. ‘한국 신화의 비밀’은 우리의 신화를 중동 지역 신화와 비교한다. 한국을 기독교적으로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될 만한 책으로 일독을 권했다.

김 장로는 지금까지 19편의 장편소설을 썼다. 칼럼 집까지 포함하면 단행본으로 55권이다. 그의 안방 서재는 성경의 맥을 찾아가는 거대한 자료 창고였다.

글·사진=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