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출판] 인간아, 잘난 체 하다 내 그럴줄 알았지… 아버지는 이렇게 비웃지 않으신다
입력 2010-06-17 20:59
집으로 돌아가는 길 / 헨리 나우웬 지음, 최종훈 옮김 / 포이에마
“그래 아들아, 가거라. 아마 상처를 입을 테고 사는 게 힘들어지고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심지어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위험을 감수하려는 걸 미리 막지는 않겠다.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너를 기다리마. 네가 떠나는 순간에도 난 여기에 있겠다. 우리는 하나이고 그 무엇도 우리를 나눠놓을 수 없단다.” 주님은 스스로 뭔가를 해보려다 쓰러진 자녀를 비웃지 않으신다. 죄책감과 부끄러움에 사로잡힌 채 잘못을 고백하는 걸 귀향의 조건으로 내걸지도 않으신다. 주님은 한없는 관용과 용서로 자녀를 안타깝게 떠나보냈다가 돌아오기만 하면 반가이 집 안으로 맞아들이신다.
우린 매일, 매시간 떠나고 돌아오길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힘겨운 시간을 만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집으로 돌아간다’는 영적의미는 무엇인가? 헨리 나우웬(Henri J M Nouwen 1932∼1996)은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자녀라는 자아상을 단단히 붙들고 고향을 향해 걷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헨리 나우웬은 삶이 힘겹게 느껴질 때 렘브란트의 작품을 보곤 했다. 대표작 ‘탕자의 귀향’을 쓰기 3년 전쯤이었다. 신경쇠약에 시달리다 심신을 치유하기 위해 은거생활에 들어갔다. 고독한 그 시기에 누가복음 15장의 이야기를 화폭에 옮긴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을 대면하며 내면의 깊은 변화를 경험했다. 복음서의 이야기와 자신의 삶을 연결지었다.
그의 내면에 집 나간 작은아들이 품었던 방탕한 삶에 대한 욕망과, 집을 지키며 살지만 내면에 원한을 쌓아가는 큰아들의 굳어진 마음이 공존했다. “난 맏이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끊임없이 친밀감을 갈구했습니다. 사랑을 받기에 적합한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야말로 안간힘을 썼습니다. 인정받으려고 부지런히 일했던 큰아들의 마음을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두 갈래 선명한 목소리에 사로잡혀 살았다고 고백했다. 하나는 “세상에 나가 성공해야 하며 네 힘으로 이뤄낼 수 있다는 신념을 잃지 말라”는 아버지의 음성이었다. 또 하나는 “죽는 날까지 지극히 사소한 일 하나라도 예수님 사랑에 의지하라”는 어머니의 얘기였다. 그는 두 가지를 다 만족시킬 수 없었기에 늘 고독했다. 예일대학과 하버드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그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종종 일터에서 물러났다.
마침내 그가 안착한 곳은 지체장애인들의 공동체 라르쉬 데이브레이크였다. 그는 이곳에서 우리가 돌아가야 할 집은 ‘아버지의 마음’이란 것을 알게 된다. 곧 ‘집에 머문다’는 것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그분의 마음속에 거하는 일일 것이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건 곧 예수님의 길을 선택하는 걸 말합니다. 삶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선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한 일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여정에서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참을성과 용기를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최근 출간된 ‘집으로 돌아가는 길’(포이에마)은 헨리 나우웬의 자전적 성찰과 육성이 담겨 있다. 그는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에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라르쉬 데이브레이크에서 워크숍을 사흘간 인도했다. 책은 그의 생생한 강의 내용을 묶은 것이다. 독자들이 경청하기, 일기쓰기, 묵상하기 3단계의 영적훈련을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안내한다.
그는 책에서 자신이 돌아가야 할 자리는 집을 나갔다 돌아오는 사람들을 두 팔 벌려 맞아주는 ‘아버지의 자리’란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조건 없이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이렇게 기록했다. “너를 너무 사랑해서 세상을 살아가며 선택할 자유를 주었다. 그러나 기억해라 내가 가진 건 모두 네 것이다.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어리석은 선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를 향한 내 사랑은 늘 진실하고 변함이 없단다. 그러므로 어서 돌이키고 나를 닮은 모습으로 살아가라.”
집으로 돌아간다는 건 곧 예수님의 길을 선택하는 걸 말한다. 삶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선하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한 일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여정에서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참을성과 용기를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누가복음 15장에 등장하는 탕자의 비유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나 익숙해져 더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헨리 나우웬은 그동안 머리로 알고 있던 탕자의 비유를 가장 내밀한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어 새로운 영성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