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에서 오다'의 저자 김성일 장로의 서재를 가다

입력 2010-06-17 21:23


북한산 자락 소설가 김성일 장로(이태원감리교회)의 서울 돈암동 한진아파트 자택 안방엔 고급 장롱이나 가구, TV 등이 없다. 자개농이 자리 잡고 있을법한 자리엔 책장이 차지하고 있다. 아리랑 고개가 내려다 보이는 창쪽으론 데스크톱이 놓인 책상이 있었고, 책장 앞에 있는 앉은뱅이 자개상 위엔 각종 자료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거실 벽 한 쪽에는 주제별로 잘 정리된 책장이 있었다. 현관 왼편 작은 방에는 읽은 지 좀 지난 책들을 뒀다. 3곳에 있는 책을 어림짐작으로 세어보니 3000권쯤 꽂혀 있는 것 같았다. 10년 전 서울 청량리동 미주아파트에서 이곳으로 이사 올 때 1트럭 분 정도의 책을 정리했기 때문에 장서가 몇 권인지는 의미가 없었다.

왜 안방을 서재로 쓰고 있을까 궁금했다. “1970년 신혼 때 단칸방에 살았는데 언감생심 꿈도 못 꿨죠. 당연히 가장 큰 공간이 서재죠. 안방에서 잠을 자고, 아이들을 키우고 책도 읽고 원고를 썼죠.”

김 장로는 결혼 후 여태까지 안방마님으로 대접하지 못한 10년 연하의 아내 이화숙 권사에게 늘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털어놨다.

이 권사는 순수문학에 빠진 김 장로를 하나님의 소설가로 거듭나게 한 천사나 다름없는 존재다. 하지만 이 권사는 원래 넌 크리스천으로 김 장로를 만나 예수를 영접했지만 믿음에 있어선 남편을 능가한다. 이태원감리교회에선 오히려 이 권사가 더 유명하다.

김 장로는 모태신앙이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 교회와 점차 멀어지게 됐다. 감수성이 풍부한 문학도였기 때문에 성경보다 서양의 역사와 철학, 소설책에 빠져 살았다. 대학을 들어가기 전, 이미 그의 독서량은 대학생 수준을 넘어섰다.

소설가의 길을 가려면 문리대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선택이지만 그는 고정관념을 뒤집었다. 제대로 된 작품을 쓰려면 이공계의 전문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계공학과를 선택했다. 당시 서울대엔 동인지 ‘산문시대’가 유명했다. 무진기행의 김승옥, 평론가 김현(작고), 김치수, 염무웅 등의 문리대생들이 터줏대감들이었다. 김 장로는 그들 틈에서 유일한 이방인이었다.

21세에 데뷔해서 40까지 순수문학 지상주의로 뜬구름을 잡는 소설을 썼다. 마흔 줄에 접어든 1980년대 초반, 8층 석탑 같던 그의 몸이 산사조각으로 부수어 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내가 위암에 걸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적이 있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을 할 수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마침내 무릎을 꿇었다. 그날 김 장로는 지난날의 모든 죄를 통곡하며 회개했다. “몹쓸 죄인은 전데 왜 아내에게 사망의 고통을 주시나요. 암 덩어리는 내게 주시고 천사 같은 아내를 살려주세요.”

의사가 불쑥 던진 한 마디가 김 장로의 심장을 때렸다. “기3운7(의술이 3이면 운이 7이다)이라는 말이 있어요. 혹시 예수를 믿으시나요. 열심히 기도나 하세요.”

김 장로는 단 칼(메스)에 두 손 들고 항복할 줄은 몰랐었다. “제가 직접 맞았더라면 그렇게 쉽게 달라지지 않았을 겁니다. 끝까지 대항했을 거예요. 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암으로 죽어가는 것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더군요. 그날 저는 하나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애원했지요.”

예수를 믿으면서도 십자가를 향해 손가락질하던 이전의 못난이가 아니었다. 사반세기 만에 예수의 품으로 돌아온 작가는 완전히 변했다. 순한 양처럼 변한 시베리아 호랑이의 모습이랄까. 표독스럽던 눈엔 따스한 광채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변신은 곧바로 신문지상으로 확인됐다. 첫 작품이 ‘땅끝에서 오다(홍성사)’이다. 83년 한국일보 1년 동안 연재된 이 작품으로 마침내 국내서 처음으로 ‘기독작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김 장로는 이때부터 성경에 나오는 내용들 중 평신도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을 소제로 소설로 썼다. 아브라함과 에녹 등에 대해 추리기법을 동원해 작품화했다.

그의 서재는 거대한 사료와 자료 창고였다. 자료가 정확하지 않으면 신뢰성이 떨어진 작품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소설을 쓰기 전에 자료를 철저하게 모으고, 분석한다. 수술하는 장면을 묘사할 땐 진짜 의사가 놀랄 정도로 의학적 지식을 구사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의사에게 금방 들통 나기 때문이다.

작품을 쓸 때는 역사 자료를 가장 중요시 여긴다. 성경에 ‘성’자만 들어간 각종 문헌들을 모조리 모았다. 특히, 동양사 관련 자료는 아주 꼼꼼히 챙긴다. 아무리 찾아도 구할 수 없을 땐 기도를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다음 날 조간신문에 찾는 내용이 특집기사로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내 힘으로 안 되면 하나님이 직접 나서 도와준다는 것이다.

김 장로가 쓰는 작품은 독특하다. 성경엔 몇 줄 밖에 나오지 않는 인물이나 내용을 한두 권의 단행본으로 만든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료가 필수다. 그래서 추리소설 기법을 많이 사용한다.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고 성경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양사와 서양사 사이엔 큰 절벽이 있다. 그 절벽 사이를 잇는 것이 성경 밖에 없다는 것이 김 장로의 주장이다.

한국고대사를 다룬 ‘홍수 이후(홍성사)’ 4권과 ‘성경으로 여는 세계사(신앙계)’ 3권이 대표적이다. 장편소설 ‘땅끝에서 오다’(홍성사)는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 실종된 동료이자 직장 상사인 친구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현장을 그린 작품이다.

‘땅끝의 시계탑(1,2)’은 1990년 쯤 국민일보에 연재한 작품이다. 88올림픽을 무대로 해서 벌어지는 사건이다. 잠실운동장이 폭파되기 전에 극적으로 해결하는 작품이다.

‘땅끝의 십자가(홍성사)는 91년 발발한 걸프전의 배후가 누구인지 궁금해 할만한 내용을 다뤘다. ’빛으로 땅끝까지‘는 생명공학을 가지고 지구를 위협하는 세력. 부활 생명공학을 통해서 우리가 바로 신이다고 자화자찬하는 이들을 고발한다.

‘소리로 땅끝까지’는 의사들이 치유의 방법으로 3가지를 이야기 한다. 광선치료와 소리와 눈물을 이용한 치료법이다. ‘오퍼레이션 띠므아’는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쓴 것으로 인류의 죄악이 몰려있는 곳을 파헤친다.

어려운 성경 내용을 소설로 풀어 쓴 ‘불타는 땅’(신앙계)은 엘리야 선교사 이야기다. 갈멜산에서 바알의 제사장과 싸워 이기는 이야기다.

역사물을 소설로 옮긴 대표적인 작품으로 ‘홍수이후(홍성사)와 ’동방(홍성사)는 대홍수가 끝나고 메소포타미아에서 한반도까지 오는 과정을 밝힌다. 특히, 동방은 고조선에서 삼국시대까지 기독교적인 사관에서 썼다.

그의 서재에는 또 2권의 간증집이 눈에 들어왔다. 93년에 나온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홍성사)’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문제가 많이 생기는 이유를 설명한다. 연재 중인 플러스 인생에 연재 주인 ‘문화전쟁의 시대’이 9월에 단행본으로 나올 예정이다.

김 장로는 대우 중공업 이사로 있다가 94년 직장을 그만두고 자유인이 됐다. 김우중 회장한테 신임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사인을 받고 모든 것을 포기했다. 한때 협심증으로 고생했지만 한 달 만에 극적으로 고침을 받았다. 미국 캐나다 태국 말레이시아 등 최근 일본까지 15년 동안 무려 2000회가 넘는 강연을 했다.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주 하나님의 높고 위대함을 전하는 내용이다.

김 장로는 독자들에게 읽어볼만한 책으로 10여권을 골라서 짧은 서평을 했다. 신앙의 비밀을 알기 쉽게 풀어내는 ‘오두막’을 펼쳤다. 납치범한테 딸을 잃은 주인공이 오두막에서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을 만나는 이야기로 신도들이 꼭 읽어보기를 권했다.

‘아프리가의 역사’는 인류 죄악의 비빔밥으로 돼 있는 이 곳이 얼마나 잔인하게 살아왔던가를 알려준다.

예루살렘의 변화를 다룬 ‘예루살렘’은 종교라는 것이 어떻게 변해 내려온 것인가를 알게 한다. ‘시간의 역사’는 우주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지적설계도가 존재했다는 내용이다. ‘신의 언어’는 유전자의 설계도가 원래 유전자 속에 들어있다는 내용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반박하기 위해 썼다고 했다.

‘용서 없이 미래 없다’는 투투의 신학이야말로 진정한 예수 믿는 신학이 아닌가하는 반문을 던지는 책이다. ‘거대한 체스판’은 세계의 판도가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체스판에 비교했다. 이 밖에 ‘한국 신화의 비밀’은 우리의 신화를 중동 지역 신화와 비교한다. 한국을 기독교적으로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될만한 책으로 꼽았다.

김 장로는 지금까지 안방 서재에서 장편소설 19편을 썼다. 칼럼집까지 포함하면 55권이다. 그의 안방 서재는 성경의 맥을 찾아가는 자료 창고였다.

글.사진=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