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찬의(전 방송토론 진행자)의 '내가 만난 하나님'②

입력 2010-06-17 16:10


김종찬(전 방송토론 진행자)의 ‘내가 만난 하나님’②

저는 2002년 7월 2일에 죽었습니다. 그날 분당 파크뷰 아파트 사건으로 체포되었고, 51일 동안 구속되었다가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고 풀려 나온 것이 2002년 8월 22일입니다. 햇빛 밝은 낮이 아니라 밤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습니다. 저는 더 이상 환한 대낮을 살기에는 적합하지 못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어두운 밤이 제격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2002년 7월 2일 이전의 삶과는 결별하였습니다. 제가 결별을 선언함과 동시에 세상도 저와 결별하였습니다. 세상은 시들은 꽃과 지는 낙엽을 기억하지 않는 법이니까요. 세상과 결별하고서 그 세상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가난이 문제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미 친구에게 선 보증이 잘못되어 전 재산이 거덜난 것도 그 무렵입니다. 저와 세상을 떼어놓으려고 누가 작정이라도 한 것 같았습니다. 정말 완벽하게 옛 것은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사람에서 물질까지 제가 가졌던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50여년의 제 삶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참으로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말은 헛된 말이 아님을 실감하였습니다.

자살? 왜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지하철? 건물의 옥상? 산꼭대기 바위? 가장 자주 방문한 곳입니다. 그러나 목숨을 끊을 자유도 제겐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가족들이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물질이라도 있었다면 저는 세상을 떠나는 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가족을 물 한 방울조차 없는 사막에 버려두고 떠날 수 없었습니다. 가난을 부른 제 죄값을 피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부지한 채로 동냥하는 걸인처럼 살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포기했을 때, 제게 주어질 수 있는 일은 너무도 제한적이었습니다. 사라진 50여년의 삶을 통렬히 반성하게 하였습니다. 좋은 차, 좋은 옷, 좋은 음식에 취한 삶과 오만방자와 기고만장으로 압축할 수 있는 곡학아세의 삶이 너무도 부끄러워서 저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굴러다니던 책 한 권을 읽게 되었습니다. 알 만한 내용이라 생각해서 오랜 세월 처박아 두었던 책입니다. 이재철 목사의 자기고백서 ‘나의 고백’입니다. 이재철 목사와는 35년이나 된 관계입니다. 그래서 아내의 권유에도 덮어두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책을 읽으면서 저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제가 모르든 사실을 알게 되어서가 아니라, 제가 알던 사실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고백하는 처절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책을 읽은 뒤, 저는 사는 게 몹시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난보다 더 불편한 것이 그 ‘느낌’이었습니다. 뭔가가 저를 심하게 간섭한다는 느낌이었죠. 생각을 할 때도, 말을 할 때도, 행동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주 거북했습니다.

그 무렵부터 저를 만나는 사람들이 절더러 이상해졌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그러다가 목사님 되는 거 아니냐고도 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 저를 간섭하는 거북한 존재가 누구인지 알게 된 듯합니다. 이재철 목사의 ‘나의 고백’이 통로였습니다. 처음부터 제게 임재해 계셨으나 저는 보지 못하고 있던 하나님을 마침내 만나게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늘 저와 함께 하시면서 저를 이끄셨는데, 저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을 알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존재였습니다. 사사건건 하나님과 상의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어리석었던 옛 삶을 청산케 하시고 새로운 삶을 심게 하신 그 분께 감사드리게 되었습니다. 너무도 가난하여, 돈 걱정 없는 날이 없고 빚 때문에 괴롭지 않은 날이 없지만, 지난 50년의 부귀영화가 조금도 그립지 않은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헛된 꿈은 사라졌고 참다운 삶의 역사가 매일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참 사람이 되는 기쁨 아실런지요?(계속)

2010년 6월 17일 김종찬(전 KBS 집중토론 사회자, ‘희망의 소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