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경찰 ‘고문 진실’ 공방… 검찰, 관련자 조사
입력 2010-06-16 21:18
국가인권위원회와 서울 양천경찰서는 ‘경찰의 피의자 고문’ 사건에 대해 각기 다른 주장을 펼쳤다.
인권위는 양천서에서 조사받고 구치소 등으로 이송된 32명 중 22명의 진술을 토대로 고문과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양천서는 피의자 조사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한 적이 없으며 담당 경찰관들도 이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 “구체적인 정황 있다”=인권위에 진술한 피의자들의 주장은 구체적이다.
지난달 7일 인권위에 진정을 낸 이모(45)씨는 지난 3월 28일 오후 2시50분쯤 절도 혐의로 양천서 강력팀 경찰관들에게 체포돼 연행됐다. 이씨는 이 과정에서 경찰관들이 수갑을 뒤로 채운 채 주먹과 몽둥이 등으로 구타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음날 오전 11시30분쯤 강력팀 사무실에서 조사를 받던 중 경찰관들이 매트리스를 깔고 눕힌 뒤 수갑을 찬 팔을 위로 꺾어 폭행하고, 소리를 지르자 수건으로 입을 막고 투명테이프로 말아 감은 뒤 20∼30분가량 때렸다고 진술했다.
양천서에서 조사를 받은 다른 21명도 이씨와 비슷한 진술을 했다. 지난 3월 26일 절도 혐의로 체포된 다른 피의자는 “팀장이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 내 목을 끼우고는 수갑을 찬 손을 위로 당기면서 꺾었다”며 “오른팔 관절이 부러지는 소리가 나자 잠시 멈추고 살펴보더니 계속했다”고 증언했다. 3월 9일 체포된 피의자도 “꺾인 팔과 숨 쉴 수 없는 고통으로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팀장이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야 풀어주고 자백을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인권위는 해당 피의자들의 구치소 입감 당시 보호관 근무일지, 의약품 지급대장 등에서 고문피해 흔적을 확인했다. 고문으로 팔꿈치 뼈가 부러졌다는 병원 진료기록과 보철한 치아가 깨진 상태의 사진 등도 확보했다.
◇양천서, “가혹행위 전혀 없었다”=양천서는 “검거 당시 피의자들이 마약에 취해 강력하게 반항했기 때문에 물리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인권위가 지적했듯 ‘날개꺾기(수갑을 뒤로 채운 채 팔을 올려 꺾는 가혹행위)’와 ‘재갈 물리기’ 등 신체적 고통을 준 일은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양천서는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일부 피의자들의 진술 역시 전혀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해식 형사과장은 “한 피의자는 공범과 싸우다 생긴 상처를 경찰이 때려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말하자면 여기서 머리를 쥐어박았으면 저기서는 다리를 쥐어박을 수도 있는 것인데, 수십명이 똑같은 수법으로 고문을 당했다고 진술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며 억울해했다.
조사실의 CCTV 화면이 절반 이상 천장을 촬영하고 있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업체가 관리하는 것이라 그렇게 녹화되고 있는 것인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이 과장은 “문제가 되고 난 뒤 CCTV의 각을 조정했는데 인권위는 이것을 은폐조작이라고 이야기한다”고 주장했다. 정은식 양천서장도 “2개월간 자체 조사했지만 가혹행위 사실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남부지검 형사1부는 지난 4월부터 양천서 경찰관들이 피의자 조사 중 가혹행위를 했는지 구속 수감자와 관련 경찰관들을 조사 중이다. 이에 따라 양측 공방의 진실은 검찰 조사 이후에나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전웅빈 이경원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