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오 기자의 남아공 편지] 월드컵 열기도 분단의 벽을 녹이진 못했습니다
입력 2010-06-16 17:48
북한과 브라질의 2010년 남아공월드컵 조별리그 G조 1차전이 열린 16일(한국시간) 요하네스버그 엘리스파크 스타디움에 갔습니다. 경기시작 휘슬이 울린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자석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관중석에서 인공기를 발견했습니다. 무시할 이유가 없었죠. 북한의 경기라면 우리에게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북한과 브라질의 경기를 취재한 것만큼이나 북한사람을 만나보는 것이 이날 저에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였습니다. 펄럭이는 인공기가 보이는 방향을 따라 관중석을 비집고 갔습니다. 50여명의 북한 응원단이 붉은색 모자와 티셔츠 차림새로 질서 정연하게 앉아있었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각각 소형 인공기가 들려 있었습니다.
함성을 지르고 탄성을 내뱉는 모습은 북한사람이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얼굴에 인공기를 그리거나 각자의 응원도구를 준비하는 등 지구촌 축구잔치를 즐겁게 만끽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죠. 이역만리 타지에서 만난 동포이니 대답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한 명에게 말을 걸어봤습니다.
“안녕하세요?(기자)” “….(북한 관중)” 그라운드만 응시한 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옆에서 얼굴을 맞대고 단 한 번이라도 저를 바라봐주길 바라며 계속 말을 걸었으나 돌아오는 것은 침묵뿐이었습니다. 다른 북한사람에게 말을 걸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 번째 사람에게 말을 건 뒤에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브라질과 남아공 사람들로만 가득 찬 경기장에서 동포인 저를 봤다면 분명 반가울 법도 했을 텐데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약속이라도 한 듯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응원만 했습니다.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그들의 응원 장면을 담았습니다. 그들의 모습을 한국에 전하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으나 누군가는 저를 저지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한마디라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유령이 된 기분이더군요.
요하네스버그=글·사진 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