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16강] 북한 수비전술, 한국에 ’희망‘을 줬다
입력 2010-06-16 21:32
‘북한, 한국에 길을 열다.’ 북한이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의 도우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북한은 16일 새벽(한국시간) 열린 조별리그 죽음의 G조 1차전에서 최강 브라질을 상대로 후방에 5명을 배치하고 정대세(가와사키 프론탈레)를 최전방에 세우는 특유의 5-4-1 포메이션을 가동, 격렬히 저항했다. 비록 1대 2로 무릎을 꿇었지만, 아르헨티나전을 앞둔 한국에 남긴 것은 적지 않았다.
북한은 이날 극단적 수비 전술과 유기적인 협력 플레이로 브라질의 창끝을 피했다. 하지만 수비에만 치중하지 않았다. 찬스가 나면 순식간에 브라질 진영을 파고들었고, 종종 수비수와 공격수의 숫자를 역전시키는 날카로움으로 상대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브라질 수비진의 자유로운 공격 가담을 막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있었다.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 곤살로 이과인(레알 마드리드), 카를로스 테베스(맨체스터 시티), 디에고 밀리토(인터 밀란) 등 최강 공격 옵션을 손에 쥔 아르헨티나와의 일전. 사실 허정무호는 정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한발 더 뛰고 쉴 새 없이 상대를 옥죄는 것뿐이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화력을 잠재울 수 있을지 의구심은 끝내 떨칠 수 없었다. 북한-브라질전은 월등한 개인기량도 효과적인 협력 수비 앞에서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한국팀 사기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이번 월드컵이 개막하기 전에도 북한은 한국의 첫 상대 그리스와 스파링을 했다. 북한은 그리스의 약점과 강점을 모조리 끄집어냈다. 그리스는 탁월한 신체조건을 앞세워 2골을 뽑아냈지만, 수비진의 스피드가 떨어진다는 약점을 노출하며 2대 2로 비겼다. 그리스와의 1차전에서 터진 박지성의 쐐기골은 한국이 그리스 수비진의 약점을 꿰뚫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주요 외신들은 브라질을 혼쭐낸 북한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스트라이커 정대세를 집중 조명했다. 로이터통신은 “1966년 런던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꺾었던 기적을 다시 창조할 뻔했다”고 했으며, AFP는 “북한은 죽음의 조에서 손쉬운 상대가 아니었으며, 상대팀들은 북한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타전했다.
AP는 “북한 공격은 정대세 한명에 의존했지만, 브라질 수비진에 문제를 일으켰다”고 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공식 홈페이지에 정대세가 눈물 흘리는 사진을 걸고는, “그들의 노력은 눈물을 흘리기 충분했다”고 치켜세웠다. 또 그의 별명인 ‘인민 루니’를 ‘아시아 루니’로 한 단계 격상시켰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