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16강] ‘인민 루니’ 정대세 펑펑 울었다… 세계 최강팀과 맞붙게 돼 좋아서 그랬다”
입력 2010-06-16 21:31
16일(한국시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엘리스파크 스타디움. 북한 국가가 경기장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그라운드엔 삭발에 가깝게 머리를 짧게 자른 건장한 사내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이 어색한 광경의 주인공은 북한 대표팀의 핵심 공격수 ‘인민 루니’ 정대세(가와사키 프론탈레)다.
정대세가 운 장면만큼이나 그의 인생도 모순과 역설로 가득하다.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나 북한 대표로 뛰고 있는 정대세의 국적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 재일교포 2세인 그의 아버지는 본적이 경북 의성으로 한국국적을 갖고 있다. 그는 아버지 국적을 따라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반면 어머니는 사실상 북한국적으로 통용되는 ‘조선적(朝鮮籍)’을 갖고 있다. 어릴 때부터 그를 총련계 조선학교를 보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북한에 가깝다.
정대세는 “나를 포함해 재일동포를 길러주고 살려주고 교육시켜준 것은 조선”이라며 “어릴 때부터 조선대표로 뛰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다. 자이니치(在日) 3세인 정대세가 북한 국적으로 월드컵 무대에 서게 된 배경이다.
정대세는 복잡한 국적에 대해 “나도 100% 알지는 못한다”고 말할 정도다. 일제 강점과 남북 분단이라는 20세기 한반도 역사의 아픔이 그의 인생에 그대로 반영돼 있는 셈이다.
하지만 정대세는 이런 아픔을 축구로 정면 돌파해 왔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다른 국적으로 국가대항전에 출전하겠다는 정대세
의 요청을 받고선 매우 당황스러워했다. 정대세는 자필 청원서를 보내 자신의 출생과 남북 역사적 관계 등을 열의 있게 설명했고, FIFA는 결국 그의 북한 출전을 허용했다.
온갖 난관을 뚫고 선 월드컵 무대, 게다가 첫 상대는 세계 최강 브라질. 눈물이 날 만도 했다. 26세의 청년은 “드디어 월드컵에 나왔고 세계 최강팀과 맞붙게 돼 좋아서 울었다”고 당당히 밝혔다.
그는 세계 최고의 수비수를 홀로 뚫으며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안타깝게 졌다. ‘골잡이는 한 경기에 한 골을 넣어야 한다’는 좌우명을 가진 정대세다. 그는 경기가 끝난 뒤 “우리 팀이 브라질 전에서 골을 넣었지만 이기지 못해 행복하지 않다”고 전의를 다지며 다음을 기약했다.
아직 도전이 끝난 것은 아니다. 포르투갈과 코트디부아르 등이 남았다. 쉽게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투지를 재현한다면 기적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의 다짐은 비장했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16강)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승리하겠다.” 짧고 분명한 각오를 밝힌 뒤 그는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김도훈 기자, 요하네스버그=쿠키뉴스 김철오 기자 kinch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