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윤재석] 문제는 軍紀다
입력 2010-06-16 17:45
“철통같은 방위 위해선 백번의 인사보다 느슨한 안보의식 바로 잡아야”
끔찍하지만 불길한 가정. 북한군이 전격 남침을 감행했다. 우리 젊은이들은 어떻게 할까?
# 인천공항으로 달려가 미국 LA행 항공편에 잽싸게 올라탄다(LA 코리아타운에 정착한다).
# LA행이 여의치 않으면 아무 항공편이나 타고 국외로 탈출한다(어디서든 알바로 버틴다).
# 이도저도 안되면 산골이나 섬으로 피신한다(북한은 도시에만 폭격을 할 테니까).
# 현역병일 경우, 집으로 연락해 부모님께 여쭤본 후 싸울지 도망갈지를 결정한다.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고조되고 있는 남북 간의 긴장 국면 속에 떠도는 우스개. 하지만 지나치게 냉소적이라며 그냥 웃어넘기기엔 허탈하다 못해 참담하다.
좀 오래됐지만 2006년 여름 실시된 한·중·일 청소년들의 역사와 국가 의식을 비교한 조사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국가 위기 시 일본 청소년의 41%가 앞장서 싸우겠다고 답한 반면, 중국과 한국은 각각 14%와 10%에 그쳤다. 지금 징집연령이 된 이들 세대의 절반 이상이 6·25전쟁 발발연도를 모르는 현실에서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블랙코미디가 횡행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군 수뇌부의 정신 나간 행태들이다. 현역 육군 소장이 ‘작전계획 5027’ 일부를 전직 대북 공작원에 넘겨줬다고 한다. 작계 5027은 북한과의 전면전 발생시 한·미연합군이 방어와 반격에 이어 통일을 달성하기까지의 단계별 작전 계획을 설정한 것이다.
문제의 장성은 자신이 근무했던 중부전선과 관련된 작전내용도 누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다.
감사원의 감사로 드러났지만, 천안함 폭침을 전후해 우리 군 지휘계통이 보여준 무책임한 대응은 도대체 우리 군이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집단인지 의심케 한다. 천안함 피폭 후 속초함은 북으로 도주하는 이상한 물체가 반잠수정으로 보인다고 해군 제2사령부에 보고했지만 2사령부는 이를 ‘새떼’로 허위 보고토록 지시했다. 군령권을 가진 합참의장은 그 절박한 시각에 술을 마셔 제대로 지휘조차 하지 못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그야말로 당나라군대가 “형님!”이라고 부를 만한 조작과 나태의 극치다.
천안함 사건이 국제사회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에 따라 북한 어뢰 공격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결론이 난 이상, 사건 자체는 전투로 규정돼야 한다. 따라서 사태에 연루된 군 인사에 대한 징계는 엄밀히 따진다면 전시 군법을 적용해야 한다. 전시 군법이 얼마나 엄중한지는 삼척동자도 잘 알 것이다. 위에 적시한 두 사례를 비롯해, 감사원이 밝힌 내용의 상당 부분이 최고 사형까지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이다.
그런데도 우리 군은 아직도 천안함 사건이 주는 묵시적 교훈에 자성하기는커녕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대북태세를 준비하는 것 같다. 마치 초코파이로 맺어진 남북한군의 우정을 그린 영화 ‘공동경비구역(JSA)’이나, 월드컵을 매개로 남북한 군이 하나 되는 상황을 그린 ‘꿈은 이루어진다’가 현실인 양 말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대북 방송을 비롯한 심리전 재개를 계획하고 있는 군이 인기 걸그룹들의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심리전 콘텐츠에 포함시키려 한단다. 남한 젊은이들에게도 인기 높은 소녀시대 원더걸스 애프터스쿨 카라 포미닛 등이 후보들이란다. 참으로 순진한 발상이다.
합참의장, 육참총장 등 군 수뇌부 인사에 이어 후속 인사가 이어질 모양이다. 하지만 이처럼 순진한 발상과 느슨한 군기를 바로잡지 않으면 백번 인사를 한다 해도 철통같은 방위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천안함 사건이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냉랭한 대접을 받고 있는 가운데, 사회전체가 2010 남아공월드컵 분위기에 푹 빠져 있다. 제2 연평해전이 났던 2002년 6월 하순이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 6·25전쟁 60주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윤재석 카피리더 jesus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