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남도영] 기자와 정치인만 모른다

입력 2010-06-16 17:43


정치부 기자 사회에 오래된 속설이 있다. ‘정치부 기자들의 예측은 늘 틀린다’는 것이다. ‘경제부 기자가 주식을 사면 팔 때’라는 말과 비슷한 얘기다. 기자의 개인적 경험을 얘기하자면, 틀린 말은 아니다. 기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대선 직전까지 예측하지 못했고,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의 돌풍을 짐작하지 못했다. 이번 6·2 지방선거 전망도 결국 틀렸다.



선거만 끝나면 언론은 늘 ‘이변’이라고 써 왔다. 지난 6·2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변은 없다. 언론과 정치인만 민심을 짐작하지 못했을 뿐이다.

결정적인 오판의 계기는 여론조사였다. 본보는 지방선거 열흘을 앞두고 수도권과 충남·북, 경남 등 전국 6개 주요 광역단체장 선거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서울시장의 경우 오세훈 후보 52.4%, 한명숙 후보 36.9%가 나왔고, 충북은 정우택 후보 50.8%, 이시종 후보 43.6%가 나왔다. 충남은 안희정 후보 38.4%, 박상돈 후보 28.5%, 경남은 김두관 후보 51.5%, 이달곤 후보 37.8%였다. 결과론적으로 6곳 중 4곳이 맞았다지만, 부끄러운 결과다.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하는 여론조사가 오히려 실제 민심을 왜곡해서 증폭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 대선 여론조사로 학위를 받은 한 소장학자는 “여론조사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여론조사의 문제”라고 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한국 여론조사기관들은 적은 비용과 촉박한 시간 탓에 여론조사의 핵심적인 사항들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 이 학자의 주장이다. 특히 하루 이틀 사이에 집전화로 여론조사를 실시하기 때문에, 30, 40대 직장인들의 여론이 제대로 잡히지 않고, 질문 문항 배치와 선정이 편견을 배제하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른다는 주장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대뜸 ‘누구를 지지합니까’라고 물어보면, 결국 아는 사람을 고르는 인지도 조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응답률을 높이기 위한 과학적인 방법들이 개발돼 있지만, 적은 조사비용으로는 이를 실천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선거결과를 해석하는 몇 가지 오류들도 지적돼야 한다. 흔히 야당이 승리하면, 20∼30대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그렇다면 젊은층보다 노년층이 많은 강원 경남 충북 충남의 ‘이변’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20∼30대가 많은 서울과 경기는 근소하지만 한나라당 후보가 승리했다. 오후 들어 젊은층이 투표소로 몰리면서 이변이 일어났다는 주장 역시 ‘젊은층은 노년층보다 늦게 투표장에 갈 뿐’이라는 반론에 직면해 있는 상태다.

현재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지방선거 참패라는 결과에 대한 해법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당·정·청 모두를 바꾸기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그러나 결과에 대한 잘못된 분석에 기초해 해법을 찾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젊은층과의 소통에 실패했기 때문에 40대 후반∼50대 초반의 인사를 등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지방선거 이후 터져나왔던 국정운영 쇄신 논의는 현재 세대교체론으로 말을 갈아탄 느낌이다. 정운찬 총리는 61세로 74세인 전임 한승수 총리보다 13살이 어리다. 박형준 청와대 정무수석은 50세로 64세인 전임 맹형규 정무수석보다 14살이 어리다. 정 총리보다 13살 어린 48세 총리를 임명한다고 해서 다음 선거에서 여권이 젊은층과 소통할 것이라는 논리는 빈약하다.

민심은 순식간에 변하는 게 아니라 오랜 시간 많은 것들이 쌓여 거대한 흐름으로 형성된다고 한다. 한두 가지 이벤트로 민심의 큰 흐름이 달라지지 않는다고도 한다. 때문에 이번 지방선거 패배 원인을 젊은층과의 소통의 부재나 세종시 등 특정 현안에서 찾기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문제를 찾아야 할 듯하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소외된 지방과 중소기업의 문제, 취업의 기회를 갖지 못한 청년들의 문제, 절차와 과정이 무시되고 효율성만 강조되는 국정운영 방식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주장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다.

남도영 정치부 차장 dy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