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인강 (13) 대학 차석졸업 후 기업재단 후원으로 미국 유학길에

입력 2010-06-16 18:00


만약 내가 대학 1학년 때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인생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1990년 2월 자비로운 하나님은 서울대 전체 차석으로 졸업하게 하셨다. 참으로 어려운 5년의 대학생활이었지만 하나님은 나의 손을 놓지 않으셨다. 김회권 숭실대 교수 등 수많은 형제자매들이 나를 부축해 주었다. 나는 이 은혜를 갚기 위해서 반드시 서울대 교수가 돼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장학금을 받고 졸업 후 바로 미국 버클리대학으로 유학을 떠나게 됐다. 선경재단의 고등교육재단 해외 장학생으로 선발돼 경제적인 부담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국비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지만 후배를 위해 양보했다.

함께 버클리에 입학할 친구와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봤다. 큰 이민가방에 책과 옷 등을 구겨 넣고 우리는 앞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에 대한 설렘과 불안감을 동시에 안고 김포공항을 떠났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렸을 때 강렬한 태양과 비릿한 바다 냄새가 우리를 맞았다. 2주 후에 있을 예비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도 합격했다. 200달러를 주고 허름한 자동차 셰비(Chevy)를 샀다. 우리는 낯선 미국 고속도로를 처음으로 달려 학교에 가보기로 했다. 무모한 질주였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헬리콥터 소리가 났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알지 못해 하늘 위를 자꾸 쳐다보았다. 그런데 옆을 지나가는 차들이 자꾸 손짓을 하고 무슨 말을 하며 지나갔다. 우리는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하고 길가로 차를 대었다. 밖으로 나왔을 때 헬리콥터 소리는 바로 우리 차에서 난 것이었음을 알게 됐다. 낡은 뒷바퀴가 터져 타이어가 산산조각이 나며 떨어져나간 것이다. 아찔한 순간, 구사일생이었다.

친구와 나는 트렁크를 열어 스페어타이어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다행히 타이어가 있었지만 도구가 전혀 없었다. 마침 옆을 지나가던 교통경찰에게 도움을 청했다. 우리는 자초지종을 짧은 영어로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은 차를 견인하라고 했다. 비용을 물어 보았더니 보험처리를 안 하면 몇 백 달러가 든다고 했다. 배보다 배꼽이 큰 꼴이었다. 우리는 도구가 없어서 그러니 스페어타이어로 교체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경찰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며 뒤돌아섰다. 길가에 서서 도움의 손길을 기다렸다. 마침 고속도로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인부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부탁해 겨우 스페어타이어로 교체하고 간신히 버클리대학에 도착했다.

처음 보는 버클리의 텔레그래프 애비뉴(Telegraph Avenue)의 풍경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길가의 노점상들과 거지들, 공연하는 사람들, 학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걱정이었지만 하나님은 정말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주셨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는데 마침 조교(TA) 자리를 예비해 놓으셨다.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나는 테스트를 받기 위해 3명의 외국인 교수 앞에서 10분 동안 모의 강의를 했다. 칠판에 여러 가지 수식을 써가며 설명했다. 평소에 철저하게 준비한 덕분에 긴장하지 않고 차분하게 강의했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