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는 기아차에 ‘노조 브레이크’

입력 2010-06-15 21:26


기아자동차가 노조전임자 무급 원칙이 적용되는 ‘개정 노동법’ 덫에 걸렸다. 노동조합이 회사 측에 노조전임자수 보장 등을 담은 임·단협 안을 제시하자 회사 측은 교섭을 거부했다. 노조 측은 사측의 단체교섭 거부를 이유로 쟁의조정을 신청하는 등 파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올해 기아차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면 20년 연속 파업을 기록하게 된다. 특히 이번 노사 힘겨루기는 노동계와 재계의 대리전 양상까지 띠고 있어 기아차로서는 해결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K5 등 신차 돌풍으로 잘나가던 기아차가 개정 노동법을 앞두고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평행선 달리는 노사=전국금속노동조합 기아차지부는 14일 안양지방노동청에 쟁의조정신청서를 접수했다고 15일 밝혔다. 쟁의조정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10일 후부터 합법적 파업이 가능해진다.

노조 측은 “사측이 전임자 임금을 구실 삼아 조합 활동을 통제하려 한다”면서 “사측은 7차에 걸쳐 교섭을 거부했고, 이후에도 교섭에 나오지 않겠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임금인상 등 다른 사안이 많은 데도 회사가 전임자 임금 문제를 핑계로 교섭에 응하지 않아 파업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노조는 또 “포르테, 쏘렌토R, K7, 스포티지R, K5로 이어지는 기아차 성공신화에 작은 장애라도 될까봐 내부에서 원만히 해결하고자 참고 또 참아왔다”고 설명했다.

반면 사측은 노조 요구안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교섭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노조가 현재 181명인 전임자를 18명으로 축소해야 하는 상황에서 올해 임·단협 요구안에 현재 전임자수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정된 노동법상 불법이라는 설명이다. 사측은 특히 노조가 이달 들어 전 공장의 주말 특근을 거부하고 있는 데다 파업에 돌입하면 생산 차질과 이에 따른 브랜드 이미지 손상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회사 관계자는 “노조의 특근 거부로 인기 차종들의 출고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고객 불만도 높아질 것”이라며 “신차 공급이 차질을 빚는다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회사에 치명적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와 재계 힘겨루기-시험대 오른 기아차=이번 기아차 노사 갈등은 노조 전임자 문제를 놓고 대형 사업장에서 벌어진 사실상 첫 대결이다. 사실상 노동계와 재계의 힘겨루기라는 의미다.

금속노조는 산별중앙교섭에서 전임자수 및 유급활동 보장을 요구하다 사측과 협상이 결렬되자 지난 8일 정부의 일방적인 노동정책 폐기를 목표로 총파업을 선언했다. 금속노조는 15∼17일 부분파업에 이어 21일부터 기아차지부와 GM대우자동차지부를 동참시켜 10만명 총파업을 성사시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회원사들에 노조 전임자 타임오프(근로시간 면제한도) 철저준수 및 파업 무급휴직 처리 등 관련 지침을 보내 맞서고 있다. 정부 또한 15∼17일 부분파업과 21일 이후 총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노동부는 “금속노조 파업이 겉으로 임금인상 등을 내세우지만 실제 주된 목적은 노조 전임자 확보”라며 “파업 참가자들은 민·형사상 책임과 징계 등 불이익이 부과될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기아차로서는 노사 간 전향적 양보 없이는 파업과 그에 따른 후유증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노조가 파업에 돌입할 경우 지난달부터 본격 출고되기 시작한 K5와 스포티지R 등 주요 인기 차종 출고 대기자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K5의 경우 지난 4월 초 사전계약 시작 2개월여 만에 국내 계약대수 2만대를 넘어선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기아차가 노조 측의 요구를 수용하면 노조에 끌려간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고, 반대로 거부할 경우 노동계의 타깃이 될 수 있다”면서 “기아차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 짓느냐에 따라 기아차의 미래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정욱 기자 jw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