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16강] 이청용은 남아공의 모태범

입력 2010-06-15 17:51

이청용(22·볼턴)이 새로운 월드컵 태극전사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스포츠가 ‘생계’여서 큰 대회에선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 운동선수들과 달리 이청용은 월드컵을 그냥 ‘재미있는 놀이터’ 정도로 여긴다. “2002년 한·일월드컵 첫 출전 때 무척 긴장했었다”고 밝힌 선배 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이청용은 요즘 ‘남아공의 모태범’으로 불린다. 모태범은 지난 2월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스포츠는 즐기는 것’이란 점을 거침없는 동작과 말로 표현했다.

이청용은 지난 14일 남아공 루스텐버그 숙소(헌터스 레스트 호텔)에서 가진 대표팀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한국-아르헨티나전이 어떻게 될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아무래도 이기는 경기가 재미있겠죠”라고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보통의 태극전사들이 ‘최선을 다하겠다’ ‘내가 맡은 역할에 충실하겠다’며 약간의 심각 모드로 가는 것과 달랐다. ‘이 선수가 지금 월드컵에 나온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청용은 한국이 그리스를 2대 0으로 이긴 뒤 믹스트존 인터뷰에서도 “평가전보다 월드컵이 쉬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스전에서 본인이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못한 점은 아쉬워했지만 그렇다고 기가 죽진 않았다. ‘오늘 부진했으면 다음에 잘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이청용은 미디어데이 때 “그동안 아르헨티나 스타일의 축구를 좋아했다”는 말도 했다. 월드컵에서 상대 팀을 동경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태극전사는 지금껏 많지 않았다. 이청용은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덤덤하게 말로 표현했다.

지난 1년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보낸 이청용은 남아공월드컵에 임하는 각오를 묻자 “내가 가져온 샴푸가 모자랐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이 좋은 성적을 거둬 남아공에 더 오래 머무르고 싶다는 뜻이다. 언론 인터뷰 때 유머를 섞어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면서도 본인의 뜻은 다 전달하는 서양 선수들 화법 비슷했다.

축구가 좋아 다니던 중학교(서울 도봉중)를 중퇴하고 열여섯 살 때 프로팀(FC서울)에 입단한 이청용은 잉글랜드에서 축구 선수로서 즐겁게 살아가는 법을 배운 듯했다. 요

하네스버그=이용훈 기자 co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