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연숙] 화려한 휴가
입력 2010-06-15 17:51
뮤지컬을 보면서 눈물을 참아 본 사람이 있을까. ‘화려한 휴가’는 슬픔에 목이 메이게 했다. 한국과 그리스 간 월드컵 경기가 있던 날, 나는 뮤지컬 ‘화려한 휴가’를 보고 있었다. 이 작품은 같은 이름의 영화 ‘화려한 휴가’를 뮤지컬로 변환한 것이다. 작품의 소재는 ‘광주민주화운동’이고, 주인공은 광주 사람들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기획사마저 “광주 이야기는 흥행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여겨 제작비 거의 전액을 제작사 측이 부담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영화는 성공했다. 관객 수 730만, 총매출액 200억원, 수익 50억원의 성적표를 거뒀다. 이보다 문화예술계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이러한 흥행에도 불구하고 기획사와 제작사를 빚더미에 앉힌 영화산업의 구조다. 이런 씁쓸한 얘기를 듣고 ‘화려한 휴가’가 궁금하던 바로 그날, 우연찮게도 뮤지컬 ‘화려한 휴가’를 볼 기회를 가졌던 것이다.
‘광주’ 이야기는 1970년대에 태어난 내게는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역사의 굴곡의 하나였다. 뮤지컬은 광주민주화운동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고통과 공포, 그리고 광주 사람들의 희생과 사랑을 담고 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속에 배어 나오는 위트 뒤에는 민주화운동으로 가족을 잃은 깊은 슬픔을 노래하고 있었다. 때문에 ‘화려한 휴가’는 춤과 노래라는 뮤지컬의 형식적인 구성에도 불구하고 애절함이 녹아 있었다. 원작에 너무나 충실한 나머지, 그리고 저예산에 맞춰 기획이나 구성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나는 이 뮤지컬로 인해 광주의 그때로 가 볼 수 있었다.
뮤지컬이 끝나고 스마트폰으로 월드컵 상황을 보니 한국이 이기고 있단다. 상업주의의 상징이 되고 있는 스마트폰으로 월드컵을 보는 모습과 30년 전 광주의 5월이 겹쳐지면서, 예술경영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예술에서 역사적 소재는 무겁고 어려운 소재 중의 하나다. 따라서 대부분 활자화되는 신중한 접근방식이 사용된다. 때문에 역사는 대부분 읽는 것이었다. 광주 이야기 역시 그러했다. 그러나 이런 소재가 예술이라는 도구를 만나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물론 상업적으로 성공하기 힘들 것 같다는 이유로 자본을 유치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다. 여기에서 예술경영이 자본주의적인 것과 공익적인 것의 가교 역할을 해야 함을 느낀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뮤지컬 ‘화려한 휴가’는 정부에서 제작비를 지원하였다고 한다.
뮤지컬을 통해 30년 전 광주를 볼 수 있었고, 우리는 그들 희생의 대가를 누리면서 오늘의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들, 그리고 희생된 사람들이 모두 함께 합창을 하는 것으로 뮤지컬은 끝이 난다.
뒤늦게 ‘화려한 휴가’가 그 당시 공수부대의 작전명이었다는 걸 알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주말에는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예술경영에 대한 생각을 이어나가는 휴가를 가져야겠다.
김연숙(출판도시문화재단 기획홍보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