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 도쿄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이일만 사무국장 “日 정부에 뒤섞인 유골 DNA 검사 요구해야”

입력 2010-06-15 18:47


경술국치 100년 기획 잊혀진 만행… 일본 戰犯기업을 추적한다

제3부 강제동원 더 깊이 들여다보기

④ 강제동원 미귀환의 상징, 유골


“유골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골마다 인생이 있어요. 꽃다운 나이에 끌려온 사람들입니다. 같은 산에 묻더라도 고향에 묻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재일교포인 이일만(66) 도쿄 조선인강제연행진상조사단 사무국장은 지난 1월 26일 일본 도쿄 스미다구(墨田區) ‘도쿄도 위령당’에서 기자와 만나 “한·일 양국 정부가 조선인 유골에 관한 진상조사와 봉환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사무국장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3월 미군의 도쿄 대공습 때 숨진 조선인 사망자 명부를 2005년 찾아냈다. 도쿄도가 1974년 발간한 ‘전후 30년-도쿄도 위령당에 잠자는 전재사자(戰災死者)’에서 이름은 있지만 유가족을 알 수 없는 4018명 가운데 50명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

그는 이 명단을 우리나라 국가기록원의 ‘일제 강제연행자 명부’와 비교했다. 12명 이름이 일치했다. 임성열(林成烈), 김경조(金景造) 이와모토 경현(岩本鏡鉉) 김성주(金星柱) 전조남(田照男) 김출이(金出伊) 김정길(金政吉) 가네무라 은주(金村銀柱)….

이 사무국장은 도쿄도 위령당에 들어가서 유골 단지를 일일이 확인했다. 단지에 이름이 붙어 있는 것도 있었지만 다른 사망자와 함께 큰 항아리에 유골이 합쳐진 경우도 많았다.

그는 “강제 연행된 조선 사람이 주로 도쿄도 내 군수공장에서 일했고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 사람도 중소공장이 많은 이곳에서 부락을 이뤄 살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조선인도 도쿄 대공습으로 상당히 큰 피해를 입은 셈”이라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대공습 때 조선인이 약 1만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한다. 일본 학계도 이 수치를 인정한다.

이 사무국장이 찾아낸 유골 가운데 유가족에게 돌려보내진 것은 아직 없다. 한국 본적지가 기록된 유골이 아예 없다. 당시 도쿄도 주소가 있는 유골도 4명뿐이다. 그는 일본 정부와 기업이 유족을 찾아내 유골 봉환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 해도 도쿄도 위령당 유골 단지가 순전히 고인의 것인지는 알기 어렵다. 시신 수습과 임시 매장 과정에서 다른 유골과 합쳐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에서 이미 한국으로 봉환된 유골도 100% 조선 사람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일본은 전쟁 당시 남양군도(남태평양제도) 등에서 숨진 자국민 유골에 대해 DNA 검사를 하는데, 한국 정부도 이를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특별기획팀 글·사진 김호경 권기석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